2025. 01. 01.
파리, 프랑스
언젠가 새해 카운트다운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서양권 새해 카운트다운 영상. 모두 손에는 맥주 하나씩을 들고 흥겨운 분위기에서 모르는 옆사람과도 서로 올해는 어땠는지, 내년엔 어땠으면 좋겠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다 같이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새해가 되는 그 순간 해피 뉴이어를 외치며 옆에 있는 짝과 입맞춤을 하는 영상. 나는 그 영상을 오래전에 봤으나 꽤나 인상 깊었던 장면이었는지 아직까지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당시에 나는 언젠가 서양권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면 꼭 카운트다운 행사에 가보겠다고 다짐하였었다.
파리에서는 개선문에서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를 한다고 했다. 몰랐는데 개선문에서 하는 카운트다운에 참여하는 게 버킷리스트인 사람도 있을 만큼 큰 규모의 행사인 것 같았다. 작년 후기를 보니 인파가 엄청나 빨리 가서 자리잡지 않으면 행사구역에 들어가는 것만 해도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당연히 빨리 가는 것에 실패해 한참을 기다려 개선문 행사구역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미 인파가 가득 차 개선문이 콩알보다 조금 더 크게 보일 정도의 위치까지 뒤로 이동해서야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하였다. 다행히 우리 위치와 가깝게 대형스크린이 있어 자정을 기다리는 동안 개선문 바로 앞 무대에서 진행되는 공연은 다 볼 수 있었다. 음악공연은 좋았지만 토크쇼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지루했다. 프랑스에선 꽤나 유명한 방송인이 나와서 진행하는지 우리를 뺀 나머지 사람들은 집중하여 토크쇼를 즐기고 있었다. 강한 추위에 진행자의 코가 빨개지고 입이 마비되어 말이 점점 어눌해져 갈 때 즈음 다행히도 카운트다운이 곧 시작된다는 화면이 보였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머리 위로 스마트폰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 시야에는 새해를 맞이해 들떠있는 사람들보다 스마트폰 카메라 화면이 더 많이 잡히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카운트다운은 이게 아닌데. 애초에 카운트다운이 시작하기 전의 스몰토크도 주위에서 아무도 하지 않았고, 맥주도 아무도 안 들고 있었다. 카운트다운은 시작됐고 텐, 나인을 외치려는 순간 프랑스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맞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십, 구 하며 한글로 말했었다. 관광객들은 당황하는 듯하다 파이브 정도까지 숫자가 내려오자 영어로 외치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든 영어든 다들 자기 카메라에 자기 목소리를 넣기 싫었던 것인지 생각보다 숫자를 세는 함성은 작았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나는 예전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아내에게 입을 맞췄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하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카운트다운이 끝난 후엔 개선문에서 불꽃놀이를 했다. 불꽃놀이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두 손 높이 스마트폰을 들고 벌을 섰다.
징벌시간이 끝난 후 우리는 사람들에게 떠밀리듯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나의 카운트다운 로망은 처참히 무너졌으나 그래도 이런 경험을 어디서 해보겠냐고 스스로 위안을 하며 걸어가고 있던 와중 하늘에서 생목으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양쪽에는 5층 정도 규모의 공동주택들이 늘어져 있었는데, 3층에서 3~4명 정도 되는 무리의 사람들이 발코니에 나와 개선문 카운트다운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인파를 향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사는 해석을 못하겠으나 분위기는 대충 새해를 축하한다 뭐 그런 내용으로 추정됐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얼큰하게 취해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 이었고, 한 손에는 스마트폰 대신 맥주를 들고 있었다. 내가 본 카운트다운 영상이 거짓말은 아니었구나.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던 사람들은 다시 발코니를 향해 스마트폰을 두 손 높이 들며 벌을 서기 시작했다. 아무튼 해피 뉴이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