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랫동안 가깝게 지낸 동생이 고민을 털어놨다. "오빠, 나 점점 싫어지는 게 많고 화가 마음에 쌓여. 주변 사람들 말이 거슬리고 성질이 나는데 참고 있는 게 괴로워. 내가 점점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많이 공감되고 뭔가 몇 년 더 살았다는 이유로 조언을 해주긴 했지만 별 쓸모는 없지 않았나 싶다. 그날도 역시 1차로 끝낼 술자리를 2차로 가게 되고 근 10년간 그래 왔던 것처럼 별일 아닌 거리로 투닥투닥거리다 헤어지고, 다음날 약간의 숙취와 함께 든 생각을 메모해 두었다. 한 두줄의 끄적거림을 아직 남아 있는 취기에 끄적인다.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살아온 시간에 비례하여 어떤 형태를 가지게 된다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스치기도 하고 어루만져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면서 어느 부분은 부드럽고, 또 어떤 부분은 굉장히 날카롭기도 해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마음에 뾰족한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그 뾰족한 곳을 '모서리'라 부르겠다. 그 모서리가 내 것은 뿔과 같고 제 것은 작은 돌기 정도 일 수 있다. 하지만 없는 사람은 없다. 반드시 타인의 그 부분에 잘못 부딪히면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게 생긴 마음들이 몇 가지 모양으로 정해져서 서로 잘 맞는 사람들만 만났으면 참 서로 살기 좋지 않을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세모난 사람인데 당신은 저보다 작은 동그라미시네요. 우린 계속 깡깡 대면서 부딪힐 테니 거리를 둡시다. 어 그쪽은 마름모시네요. 제가 그쪽을 다 채우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적당히 맞아떨어지니 뭐 한번 잘 지내보죠. 뭐 이런 식의 대화들을.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상적인 인간관계다.
내 마음에 모서리가 있는 건 그게 원래 내가 가진 내 고유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돌을 위대한 예술품으로 만들 때 '난 조각을 하는 게 아니고 돌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형태로 되돌리는 것뿐이다'라고 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냥 내 본연의 형태로 돌아가는 거다. 물론 세월의 풍파에 날아온 진창들이 달라붙어 생긴 요철 같은 모서리들도 있지만은 그런 것들은 누군가가 따뜻한 물로 씻겨주면 금세 사라진다. 그 동생도 그렇고 나도 그런 식으로 내가 너무 뾰족뾰족하다고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그런 누군가를 아직 곁에 두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리라.
집안에서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다고 책상을 버리지는 않는다. 다음에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하거나 보호스티커를 붙이거나 살짝 그 끝을 갈아내는 등의 조치를 취할 뿐이지. 책상이나 의자와 다른 점은 이건 내가 스스로 갈아내야 한다는 거다. 그러려면 우선 내 모서리가 어디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그것도 모르고 이리저리 갈아 내다 보면 그 마음은 너무 작아지고 둥글어져 타인이 밀고 당기는 데로 이리저리 뎅굴뎅굴 굴러다니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난 그 모서리가 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 동생은 조금 개수가 많긴 해도 별사탕처럼 작고 귀여운 모서리를 가진 사람이다. 그중 몇 개 정도는 내가 더 뭉뚝하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것도 그 친구가 원할 때 이야기지만 시간을 기꺼이 들여볼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내 모서리 중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도 좀 얌전한 각이 잡히지 않을까. 좀 마찰열이 뜨거울지도 모르겠다. 데이지만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