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보약 못 먹은 지 오래됐다.
8월의 초입. 요 며칠 전부터 날씨 탓에 제대로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새벽이면 온몸에 땀이 흥건해져서 일어난다. 열대야가 이렇게 온몸을 핥고 지나가면 다시 잠드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 정말 온 신경을 다 기울여서 떨쳐내야 겨우 잠들 수 있는데, 일상의 모아놨던 에너지를 스르륵 빼면서 잠드는 보통의 날들에 비하면 정말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온몸이 끈적한 것 빼고는 이렇게 제대로 잠을 자고 1/3쯤 덜 깬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내게는 흔한 일이다. 그렇다. 나는 불면증이 있다. 약물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몇 년간 제대로 잠을 잔 날은 온몸을 혹사시켰을 때 빼고는 기억나지 않는다. 잠든 후 3~4시간이면 깨고 그 뒤로는 억지로 잠드는 게 밤의 일상이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난 한 달간은 몸과 머리가 혹사당한 날들이었기에 좀 괜찮았는데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다시 이 모양이다. 솔직히 날씨는 핑계다.(하지만 더럽게 더운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는 병원에 찾아가 보라고 하지만 난 수면유도제가 잘 듣지 않는다. 15년 전 입대 전에 한번 병원에 찾아간 적이 있는데 처방대로 약을 먹어도 잠에 들지 않았다. 홧김에 3~4배의 약을 한 번에 먹어버렸는데 다음날 일어나서 정말 지옥을 경험했다. 온 세상이 핑핑 돌고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세 시간 정도 마룻바닥에서 기어 다니다 쓰러지고 다시 기어 다니기를 반복하다 겨우 정신을 차렸었다. 그 뒤로 다시 병원에 가지 않다가 입대했다. 입대 다음날부터는 매일 파김치가 될 때까지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수면장애가 없어졌다가 좀 편해진 일 년 뒤쯤부터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모양 이 꼴이다.
불면증, Insomnia의 어원은 잠의 신 솜누스Somnus에서 유래되었다. 솜누스는 그리스 신화의 히프노스Hypnos와 동일한 신이다. 히프노스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는 쌍둥이 신으로 인간은 고대부터 잠과 죽음을 같은 것으로 여겼다. 사람은 잠을 자면서 동시에 죽음의 안으로 들어가 잠시 그 필멸의 공포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삶과 죽음을 매일 오가며 사람은 나이 들어가고 죽음이라는 숙명을 차츰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라고.
현대 정신의학에서 불면증은 모든 정신질환의 원인 중 30%를 차지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전조증상이다. 특히 우울증과 관계가 깊다. 불면증으로 입원을 하게 되면 십중팔구는 항우울제가 처방된다. 매일 잠을 못 이루는 것이 나를 우울하게 하는 건지 우울한 나의 일상이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건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현대 성인의 반 정도가 단기 불면증을 겪고 있고 나도 그중 하나다.
위인들을 살펴보면 윈스턴 처칠이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등이 불면증을 앓았고, 마릴린 먼로나 빈센트 반 고흐 등도 고질적인 불면증 환자였다. 불면증과 가장 친숙한 사람들은 작가다. 마르셀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워즈워스,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 등이 불면증을 앓았다.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타인에게 시달리거나 자기 자신의 내면을 소비하고 싸워내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예민함이라는 특성이 가져다주는 필연적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대단하다고 표현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겪었다고 해도 내 졸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내게 필요한 건 그런 위안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가졌었던 꿀잠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불면증의 기원은 불안이다. 짧게는 '오늘 제대로 못 자서 내일 피곤해서 어쩌지'라는 불안부터 '나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는 건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불안까지. 그렇게 파고들다 보면 해답은 없다. 인간 자체는 이미 불안한 존재이다. 필멸할 것을 우리는 성인이 되기 전에 다 안다. 우리의 불안은 결코 풀리지 않는다. 작년에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우리 불면증 환자들은 자기 자신에게 우선 신경을 꺼야 된다. 하지만 뭐 그게 쉽나. 내가 말하고도 어이없는 헛소리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은 주로 돈이다. 돈이야 벌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몇 년간 잘 되지 않아 만성이 되고 있다. 왜 돈을 못 버냐 하면 하고 싶은 일을 못 찾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살아지는 대로 살았고 내가 하고 싶다기보다는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그 일을 열심히 했었다. 그러다 보면 내 길이 보일 거라고 굳게 믿었지만 실패했고 영구적인 시력손상을 불명예스러운 훈장처럼 얻었다. 지금의 나는 멀찍이 보면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프리랜서라 쓰고 반백수라고 읽는 삶을 살고 있다. 모든 것을 끊고 비루한 나를 마주 보며 쓰다듬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업을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내 모든 불안의 근원이다.
내 작가 명인 'MeMo'는 'Memento Mori'라는 라틴어의 준말이다. 직역하면 '죽음을 기억하라'인데 그 참 뜻은 '나 자신이 반드시 죽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의미다. 나는 요즘 내가 몇십 년 뒤에 죽을지 아니면 내일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 당장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고 타이르면서 살고 있다. 이건 사실 나 자신에게 적용해야만 되는 이야기이다. 그동안 너무 이타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서 난 나 자신을 위하질 않는 나쁜 마음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해주면서 내 자존감을 붙잡았다. 이기와 이타의 균형을 잡아가며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계속 기억할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머지않아 곤죽이 되도록 일하지 않아도 편히 잠드는 밤이 오지 않을까. 죽음과 잠은 형제니까.
죽음님, 말씀 좀 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