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쓰는 글
이지만 그 와중에 적당히 고친 글
#1.
가루가 죽은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이제 그 아이가 없는 일상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있지만 이따금씩 눈물이 솟아올라서 곤란할 때가 참 많다. 버스 안에서 갑자기 눈물이 날 때도 있고 청소기를 돌리다가 청소기만 보면 후다닥 도망가던 뒷모습이 생각나서 움직이던 걸 멈추고 운다. 마음속에 그리움이 눈처럼 조금씩 쌓이다가 확 녹아서 졸졸 눈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다. 몇 년 전에 먼저 반려견을 보낸 형님은 동물을 삶에 들이는 것은 '슬픔을 대출받았다가 한꺼번에 상환하는 꼴'이라고 표현했는데 난 아직 갚을게 남아있나 보다.
#2.
환경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집 정리를 시작했다. 어느새 옷이 또 늘어나 있다. 책도 늘어나 있다. 둘 다 과하지 않게 가지고 있자고 늘 다짐했었건만 나 자신에게 방심하고 살았나 보다. 그냥 다포 기하고 '맥시멀 라이프'를 살까도 고민해본다. 기억을 소중히 한다는 핑계로 못 놓는 물건들이 많다. 사람도 그렇다.
#3.
너 때문에 절망하고 괴로워하다가도 웃는 얼굴을 막상 보면 금세 다 까먹는다. 개를 몇 년 기르더니 사람 길들이는 법도 터득한 걸까. 그게 딱히 싫지는 않다. 당신이 날 보고 웃는 건 요즘 나에게 가장 큰 행복함이다.
#4.
올해를 보름도 채 남기지 않은 밤에 무얼 하고 살았나 생각해보지만 떠오르는 게 딱히 없다. 지난 몇 년간, 아니 평생을 누군가의 주변인으로만 살아왔던 건 아닌가 분석 중이다.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자존감을 채워왔던 것은 아닐까.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던 작업들이 좀처럼 다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자꾸 짧아지는 문장처럼 긴 생각을 이어나가기도 어렵다. 툭, 툭, 툭. 생각들은 여기저기 끊긴 채로 흩어져 있다.
#5.
폴리아모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게 보다 성숙하고 합리적인 방식의 사랑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불장난 내지 바람피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가지는 독점욕과 소유욕은 너무나 강력하다. 그것을 넘어서는 다자간의 사랑은 과연 세상에 존재하는 걸까.
#6.
이따위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내가 너무 부끄럽고 한심하다. 그래서 꼭 써서 남겨 놓아야겠다.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하다 마는 것은 그동안 너무 많이 했으니 가끔은 다른 행동을 해보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