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is the hardest part
사는 게 힘들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하는 것, 당연하게 하는 것들이 나는 가끔 버겁게 느껴진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벗어나는 일,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물 한잔 마시는 일, 정해진 시간에 영양제나 약을 챙겨 먹는 일... 모든 게 어렵거나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조차 버거울 때도 있다.
"But Living is the hardest part."
(하지만 사는 게 제일 힘들어.)
- 아무로나미에 [What I Did For Love]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처럼, 사는 것 자체가 가장 넘기 어려운 허들처럼 느껴진다. 세네카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때로는 살아있는 것조차 용기일 때가 있다.' 누구나 사는 게 힘들겠지, 매일 찬란한 꽃밭이진 않겠지. 하지만 모두 나처럼 이렇게 힘들까? 그렇다고 정신과에 갈 용기는 없다. 아니, 용기라기보다는 '네, 우울증이네요.'라는 말을 듣는 게 무섭다. 그렇다고 하면 정말 그럴 것 같으니까. 저 문장이 귀에 꽂히는 순간, 나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한 걸음 내딛게 될 것 같으니까.
오늘 내 손에 들린 책이 하필이면 우울에 관련된 책이었다. 공감을 잘하는 게 장점이지만 이럴 때는 단점이기도 하다. 가슴속 깊숙한 곳에 쌓여있던 우울이 다시 기어올라왔다. 사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다. 죽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안다. 삶을 끝낼 용기는 없다는 걸.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을 어찌어찌 잘 버텨왔다. 그때의 감정만 남았을 뿐이다. 구체적인 기억들은 조금씩 풍화되어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가버렸다.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은 오히려 퇴사하지 않고 오래 다니는 것처럼, 나도 이 애착 없는 인생을 그 누구보다도 가늘고 길게, 그리고 조금씩 기어올라가며 살 것이다. 'Living is the hardest part'의 앞 가사는 'I remember every scar.' (난 모든 상처를 다 기억하고 있어) 그래, 나는 내 모든 과거의 상처를 다 기억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거다. 사는 건 여전히 힘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