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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마음의 치유가 될 수 있는 이유

날 것의 언어로 쏟아내는 감정

by 챤현 ChanHyeon

고백한다. 나는 아버지와 좋은 관계가 아니다. 아버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나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가부장적인 사람,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람, 고집불통. 딱 이 정도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 좋은 감정보다는 나쁜 감정부터 품게 만드는 아버지. 사람들은 어릴 때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커서 부모님의 나이가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껏 아버지를 이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과연 나는 몇 살이 되어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버지의 주사에 있다. 술을 마시면 흥이 오르고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하거나, 했던 말을 반복하고... 그런 귀여운 수준의 주사가 아니다. 아버지의 술주정은 사람을 피 말리게 한다. 회사에서 감정 상한 일이 있었다면 누나와 나는 욕받이 무녀가 된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시며 하는 욕들은 이상하게 우리를 향해 있었다. 회사에서의 악감정 하나 털어내지 못하고 집까지 가져와서 전혀 상관없는 우리에게 화살을 돌리다니.


훈육을 위한 체벌 외에 맞은 적은 없다. 그러나 꼭 때려야 폭력은 아니다. 우리를 향한 욕을 듣고 있자면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낳았을까?' 별 일 없이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려다가도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고 오는 날이면 순식간에 나의 하루는 산산조각이 난다. 예전에는 이 불쾌하고 짜증 나는 감정을 해소할 줄 몰랐다. 며칠 동안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하여 일부러 밤늦게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아니면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일부러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감정이 해소되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현실을 차단할 수는 있었으니까.


술주정은 진심이 아니라더라, 그냥 하는 말이니 흘려들어라, 이런 말은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쁜 말일수록 가슴에 더 잘 박혔다. 못을 뽑아내도 그 자리에 흔적이 남듯, 아버지의 술주정은 언제나 내 마음에 긁힌 흔적을 남겼다. 이럴 때는 이상하게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온갖 방법들이 들어먹지 않았다.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먹어도,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며 산책을 해도, 아무 의미 없이 잠을 자도.


그런 내가 찾은 신기한 방법이 있다. 바로 글쓰기. '엥? 그게 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그랬다. 글쓰기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데, 의문만 들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하고 나니 확실히 기분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분도 한 번 사용해 봤으면 좋겠다. 우선 블로그나 메모장, 뭐든 상관없다. 비밀글로 아버지에 대한 감상을 마구마구 적었다. 어차피 나만 볼 거니 욕도 서슴지 않았다. 글을 쓸 때는 최대한 예쁜 단어를 고르고 정제된 표현을 골라서 썼다. 그러니 감정이 해소될 리가 없었다. 감정은 언제나 날 것 그대로니까.


A4용지로 반 페이지 정도가 찰 때까지 나는 마구마구 내 속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발행. 필터를 거치지 않은 뾰족한 말들은 블로그 메인에 며칠간 남아 있었다. 내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그 감정이 사라졌을 때 나는 블로그의 글을 지웠다. 항상 그런 일이 있을 때면 나는 누군가를 붙잡고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때로는 엄마, 때로는 누나, 그리고 때로는 친구. 말을 할 때는 속이 후련했지만, 감정이 사그라들고 나면 후회했다. 아, 나는 또 소중한 주변 사람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썼구나.


이 방법을 사용하면 주변 사람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쓰지 않을 수 있다. 감정은 오로지 나만의 것으로 컨트롤할 수 있으니 훨씬 건강하다. 최근 친구가 글쓰기로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며 나에게 토로했다. "나도 너처럼 글을 썼는데, 왜 하나도 나아지지 않아?"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혹시 일부러 예쁜 말, 예쁜 표현을 골라 쓰진 않았어? 만약 그렇게 했다면 평소에 네가 하는 말들을 그대로 써봐. 오타가 나도 좋고, 키보드를 마구 두드려도 좋아. 거기에 전부 뱉어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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