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는 지키라고 있는 거예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약 4년 간 PT를 받으며 헬스장에 다녔다. 103kg까지 불어난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은 충격에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네가 이 세상에서 1g이라도 사라지는 게 싫어'와 같은 로맨틱한 말로 도저히 넘길 수 없는 지방이었다.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냈는데, 그 담을 허무를 때가 온 것이었다.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순전히 내 선택으로.
헬스장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온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매너를 지키는 사람은 몇 없다. 헬스장 매너라고 해봐야 별 것 없다. 운동에만 집중할 것, 스마트폰 보면서 시간 보내지 말 것, 내가 쓴 자리는 정리할 것. 한 세트 끝내고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운동을 할 수 없으니 비매너고, 내가 쓴 덤벨이나 원판을 정리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귀찮아지니 이것도 비매너다. 단지 이걸 비매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다지 없다는 게 문제. "제가 쉬겠다는데 왜요?" 이런 말만 들을 게 뻔하다. 상종하지 말아야지.
다니고 있던 헬스장을 어떤 이유로 그만둔 후, 나는 이 헬스장에서 일하다가 독립하신 트레이너 선생님이 운영하는 개인샵으로 옮겼다. 1:1 수업이라 내가 운동할 때는 오로지 나만 그 공간에 있다는 게 매력적인 샵이었다. 여기서는 몇 kg 감량 같은 목표를 두지 않았다. 처음 PT를 받을 때만 해도 온갖 감언이설로 날 유혹하던 게 트레이너였는데, 이 트레이너 선생님은 그런 게 없었다. 그저 운동을 좋아하게 되면 그걸로 만족이라고 하셨다.
정말 특이했던 건 운동을 가르쳐주시면서 틈틈이 헬스장 매너에 대해서 알려주셨다는 점이었다. 처음 PT를 받을 때는 운동만 배웠지, 헬스장 매너를 배운 적이 없다. 부끄럽지만 나도 원판이나 덤벨을 제자리에 두지 않고 자리를 떠난 적이 아마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새로 옮긴 개인샵에서는 매너부터 배우니 생소하면서도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벤치를 쓸 때는 수건을 깔고 사용할 것. 왜냐, 땀이 묻을 수 있으니까. 사용한 덤벨과 원판은 제자리에 둘 것. 항상 주변을 정리할 것. 이 간단한 것들을 배우면서 속으로는 '당연한 거 아냐?'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이걸 배우기 전까지는 실천한 적도, 실천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사실 매너라는 게, 꼭 배워야만 아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 내가 당했을 때 싫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그게 매너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하거나, 뛰어다녀선 안된다는 것도 우리는 어렸을 때나 배우지, 다 커서 배우진 않는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내가 편한 게 우선인 것 같다. 도서관에서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우렁찬 메신저 알람이 울려도 결코 매너모드로 바꾸지 않는다. 마스크에 침 튀는 게 싫다며 마스크를 벗고 기침하는 사람도 여럿 봤다.
내가 편한 건, 다른 사람들이 매너를 지켜줬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모두가 편하자고 달려들면 개판이지, 사람판이 아닐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