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을 걸으면 네가 생각나
[마쳤어? 지금 앞인데, 나와.]
일을 끝내고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니 그에게 메시지 한 통이 와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기다려주는 그.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샤워기 아래에 몸을 들이밀고 5분 만에 샤워를 후다닥 마쳤다.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을 털며 나가니 회사 입구에 우두커니 그가 서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자 오래 기다린 거 아니라며,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한 마디 꺼낸다. 내가 부담 느낄까 미리 선수 치는 것도 참.
사람들은 하나 둘 거리에서 사라져 간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거리를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다. 다만 알고 있다. 그냥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피부를 스치는 차가운 밤공기도, 짙게 배어 나오는 풀내음도, 드문드문 보이는 별들도, 그 모든 게 함께 있기에 기억 속에 새겨 넣는다는 걸. 말없이 걸어도 어색하지 않은 둘은 그렇게 신호등 앞에 서 파란 불이 되는 걸 기다렸다.
"매일 오면 지치지 않아?"
"괜찮아. 아니면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못 보잖아."
사랑은 넘쳐흐르는 물. 그 물이 마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 끓어 수증기로 날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만, 딱 지금만큼만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바라는 것도 참 많은 사람. 감정이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그는 알고 있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사실은 나도 똑같다는 걸.
그날이 왜 기억 속에 자꾸 남아 있을까? 하늘을 보려 고개를 올렸다 서서히 내렸을 때, 네 눈에 비친 반짝임이 예뻐 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둠 속에서도 수줍은 듯 붉어진 피부가 잘 보였기 때문일까?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진 거리에 혼자 있으니 유난히 그날이 생각난다. 모두 사라져 버린 사랑, 그 밑바닥을 손으로 쓸어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밑바닥은 손에 남는 것조차 없다. 영원이란 없다는 말을 되뇌어본다. 소중했던 시간, 소중했던 그 사람. 추억은 그렇게 항상 지나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