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명절은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어릴 때나 좋지, 크면 아닐걸?"
명절을 며칠 앞둔 어린 시절의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3일이나 쉴 수 있고, 학교도 가지 않는데 아닐 게 뭐 있지? 어린 나는 생각이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지긋지긋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사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설렘이었다. 검정 글씨로 가득 채워진 달력에서 합법적으로 잠시 풀어질 수 있는 빨간 글씨. 마치 자유를 주는 것 같은 색.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20대가 된 이후였다.
조금 나이를 먹었을 뿐인데 명절을 바라보는 내 태도가 바뀌었다. 20대가 되니 둔감한 나조차 느낄 수 있을 만큼 할머니댁을 둘러싼 공기의 흐름에는 긴장감이 맴돈다고 해야 할까. 어린 시절에는 분명 안방에서 녹색 모포를 깔아 두고 고스톱을 치는 어른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윷놀이나 부루마불 따위를 하며 어른들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그러나 20대가 된 이후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나잇대가 비슷한 사촌들은 함께 모여 노는 일 따윈 없었다. 아르바이트, 공부로 바쁘다며 할머니댁에 오지 않는 사촌도 있었고, 그런 그들이 보고 싶거나 그립지 않았다. 어른들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기보단 TV나 스마트폰 화면에 얼굴을 묻고 서로를 단절하기 바빴다. 가끔 오고 가는 대화 속에는 말보다 한숨이 어째 더 많은 느낌마저 들었다.
30대가 되니 명절은 이제 귀찮고, 보기 싫은 무언가가 되었다.
나이는 설렘마저 사라지게 하는 걸까? 아니. 그건 나이 문제가 아니다. 살기 팍팍해진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들숨에는 말을 고르는 듯했고, 날숨에는 정성스럽게 고른 말을 바늘처럼 뾰족하게 만들어 날 찌르기 바빴다. 잔소리. 예예, 그거 듣고 싶어 하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기어코 토해내시네요.
"살쪘지? 맞잖아.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너는 볼 때마다 몸집이 더 커지냐?"
내 몸에 대한 이야기는 술도 마시지 않는 그들의 안주거리가 되었고, 나는 언제나 그 술상 위에서 운명을 기다리는 노가리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그 말을 듣고 기분 나쁜 표정이라도 지으면 꼭 다음 말이 따라 나와서 더 기분을 잡쳤다.
"농담 좀 한 것 가지고. 농담도 못하겠네."
"네가 참아야지, 어른인데."
농담이라, 듣는 나도 웃겨야 농담일 텐데, 나는 전혀 즐겁지가 않아요.
아직 어른의 맛을 모르는 철부지일까요?
이제 나는 30대 중반이고, 누가 봐도 어른인데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요?
명절만 다가오면 숨이 막히고 신경이 곤두선다. 엄마의 말대로 명절이 즐거운 건 딱 어린 시절까지.
물고 씹고 뜯고 맛봐서 행복하셨으면 다행이네요. 저는 아직 그 맛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