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에 추억을 담는
겨울이 되면 잊으려 했던 기억들이 다시 나를 찾아와. 겨울과 관련된 추억은 아니고, 섬유유연제와 관련된 추억들이. 너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섬유유연제를 딱히 사용하지 않았어. 빨래할 때 번거롭기도 하고 인위적인 그 향이 싫었거든. 그런데 너의 다우니향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어. 세상에 이렇게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향이 있었나? 까슬까슬한 베이지색 니트를 입은 네가 나를 안아줄 때면 니트 솜털이 코끝을 간질거려 그 품에서 벗어나고 싶다가도 포근한 다우니향에 푹 취해버려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우리 사랑은 영원할 것만 같았고,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았던 그 순간. 그러나 영원이란 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듯, 우리 사랑에도 끝은 당연히 있었어. 너와 헤어진 이후로는 다우니를 못 쓰겠더라. 그걸로 빨래를 헹구면 네 생각이 날까 봐. 이별을 낫게 하는 약은 시간이고, 사람은 사람으로 잊을 수 있다는데 향은 그럼 무엇으로 잊어야 할까? 누가 나에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사람은 향기 속에 추억을 남긴다고 하잖아. 그래서 그런지 스쳐 지나가는 다우니향에 자꾸 네가 떠올라.
겨울. 빨래를 헹굴 때 다우니를 쓰는 계절. 우리가 헤어진 계절. 이제 이름도,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네가 그 향기 하나에 다시 떠오르는 계절. 언제쯤 그 향기에서 너와의 기억이 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