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산티아고의 추억 4

생 장 삐에드 뽀흐 Saint-Jean-Pied-de-Port

by 이프로

몽파르나스 역 Gare Montparnasse에서 이른 아침 기차를 탔다. ㅂ의 딸과 남친은 기차 안에서 먹을 삶은 계란과 오렌지를 싸 주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해 역사를 빠져나갈 때까지 플랫폼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는 두 젊은이가 예뻤다.


고속철로 네 시간 여를 달려가는 긴 여정이라 한산한 이른 아침 기차에 ㅂ과 나는 각자 자리를 잡고 편하게 앉았다. 이제 정말 순례가 시작되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산티아고 순례에 관해서 읽고 찾아보고 머릿속에 그려보던 순례인가. 설렐 것 같았고 흥분될 것 같았는데 막상은 그냥 차분한 마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출발하는 날부터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다.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어서 널브러져 있다가 중간 즈음에 식당칸에 가서 커피를 사 와 마시며 정신을 차렸다.


바욘 Bayonne에 내려서 역사로 나왔더니 기차에서는 우리 말고는 안 보이던 순례자들이 여기저기서 배낭을 멘 채 서성댔다.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바욘에서 생장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까지는 한 시간쯤이 남아있어서 역 주변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면 적당할 것 같았다. 여러 한국인중에서 싹싹하게 말을 붙여온 아가씨 둘과 같이 식사하러 가기로 했다.

ㅅㅎ와 ㅂㅇ 두 아가씨는 다른 아가씨들 그룹보다 나이가 좀 있는 30대였는데 ㅅㅎ는 일본 시코쿠 순례길을 완주한 경력이 있었고, 출판사에서 표지 디자인을 하는 부산 출신 ㅂㅇ과는 같이 검도 도장을 다니며 언니 동생하는 사이였다. 우리는 바욘 역 근처의 이탈리안 식당에 들어가서 파스타와 피자를 시켜서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기차를 탔다.


생장으로 향하는 기차 안은 모두 순례자들이었다. 두 칸짜리 작은 열차는 느리게 아름다운 풍경을 뚫고 프랑스 산악지방으로 나아갔는데 어느새 창밖 풍경은 곧 비가 쏟아질 듯 매우 흐린 날씨로 바뀌어 있었다. 날씨 탓인지 기차 안의 순례를 앞둔 사람들 표정이 다소 굳은 채로 무거웠다. 동행끼리 작게 속삭이던 사람들도 어느덧 모두 입을 다물었다. 다들 창밖으로 펼쳐지는 계곡과 산 구릉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있었다.

이제 내일부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날은 흐렸지만 가까이 지나치는 시냇가와 초록빛 계곡은 싱그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기차는 생장삐에드뽀흐에 도착했다.


앞사람을 따라 시내로 들어와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니 순례자 사무실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지트에 먼저 들러서 짐을 내려두고 오기로 했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우선 좀 쉬고 싶었다. 숙소의 프랑스 여주인은 쾌활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고 배정받은 침대로 가서 잠깐 눈을 붙였다. 이 숙소는 한국에서 카미노 고수분의 추천으로 두세 달 전에 예약을 해 둔 것인데 사람들에게 평이 좋은 지트여서인지 금방 매진이 되는 인기 알베르게였다. 오후 늦게 다시 나가 순례자 사무실에서 크레덴샬과 가리비 껍데기를 구입하고 중고 스틱도 5유로를 주고 구입했다. ㅂ도 나를 따라 중고 스틱을 구입했는데 그는 한쪽만 구입했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버리고 맨손으로 다녔다.


저녁 식사는 모든 순례자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했는데 여주인이 식사하면서 각자 소개를 하도록 하고 이런저런 질문도 하는 사회자 역할을 했다. 순례자들이 너무 많아서 두 테이블로 그룹을 나누었는데 영어를 하지 않는 프랑스인들로만 한 테이블을 만들고, 다른 테이블은 영어를 사용하는 테이블로 나누었다. 우리는 유일한 동양인이었는데 이 숙소가 유럽인들 사이에 유명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ㅂ은 내 옆에 붙어있기를 원했는데 여주인이 물어보는 말에 내가 끼어들 새도 없이 알아듣는 척 '예스, 오케이'만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프랑스인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나와 떨어져 앉아서 그들과 와인을 권커니 잣 커니 하길래 괜찮은가 보다 하고 나도 내 테이블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여주인은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출신 지역과 간단한 카미노 정보를 알려주었는데 여주인을 비롯한 다른 순례자들은 내가 한국에서 온 것을 신기해하면서 난데없는 북한의 동향을 포함한 이런저런 한국과 관련된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왔다. 잠을 못 자서 피곤한 것도 잊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 ㅂ을 쳐다보니 아까는 신나서 들떠있더니 꾸어다 논 보릿자루 같이 지루해하면서 애타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쪽으로 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앉을자리도 없고 자리가 좁아서 부르기도 애매했다. 와인에 취한 프랑스인들은 말이 없는 ㅂ을 아예 제쳐두고 저희들끼리 소리 높여 떠들어댔는데 내가 보다 못해 오라고 손짓을 하자 풀이 죽어서 일어나더니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하던 얘기를 마치고 나도 침실로 올라가 보니 ㅂ은 이미 코를 드르렁 골면서 잠에 빠져있었다. 나도 너무 피곤해서 곧바로 자리에 누웠지만 밤부터 쏟아지던 빗소리에 잠이 들었다 깼다가 또 설치고 말았다. 파리에서 와인을 매일 마셔서 술을 피하다가 식사 후반에 좀 취하면 잠들기 쉬울까 싶어서 뒤늦게 와인을 마셨는데 발동이 좀 걸리려 하자 마침 와인이 다 떨어져서 취한 것도 아니고 맨 정신도 아니고 어정쩡해서 더 잠들기가 곤욕스러웠던 것이다. 이제는 이 층침대여서 맘대로 뒤척이지도 못해서 고문받듯이 누워있다가 비가 잠깐 멈춘 새벽에 살그머니 일어났다. 아래쪽 침대의 ㅂ을 내려다보니 그는 아직까지 꿀잠을 자고 있는 눈치였다. 잠 못 이룬 자에게 아기처럼 쌕쌕 숨을 쉬며 숙면을 하는 자의 모습은 야속하고 서운한 일인데 나를 제외한 숙소의 모든 순례자들이 깊은 잠에 빠진 듯해서 홀로 지친 밤을 소리 없이 뒤척이느라 혼자서 진땀이 날 지경이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짐을 꾸리고 부산히 움직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녘에 잠깐 잠에 빠져든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파리 도착 후 처음으로 깊은 잠이 들었던 거라 그 짧은 잠이 달디달았지만 너무 짧아서 야속했다. 먼저 일어난 ㅂ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잠을 못 잔다더니 쿨쿨 잘만 자네, 도대체 몇 시간을 잔 거야?'

나는 세수도 못하고 주방으로 내려가서 어제 주문해 놓은 샌드위치를 받아왔다. 오늘 산맥 Los Pirineos을 넘는 길에는 식사할 때 사람들이 많아서 밀리고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면서 원한다면 도시락을 싸갖고 가는 게 나을 것이라고 여주인이 조언을 해주었던 것이다. 날씨가 궂어서 나폴레옹 루트 Napoléon route가 막힐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점심 식사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아서 도시락을 챙기길 잘한 것 같았다. 양치만 하고 서둘렀는데도 ㅂ이 펼쳐놓은 침낭을 아무렇게나 배낭에 쑤셔 넣었다가 나머지 물건들이 안 들어가서 다시 풀었다 싸기를 반복하고 거리로 나섰다가 충전기를 잊어서 다시 되돌아오는 등 시간이 많이 걸려서 우리는 다른 순례자들보다 많이 늦게 출발했다.


거리로 나서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폴레옹 방향으로 출발했던 사람들이 다시 되돌아오고 있었다. 자세히 듣진 못했는데 길이 막혔거나 통행이 금지돼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일부만 돌아오는 걸로 봐서 그냥 강행하는 사람들도 꽤 되는 것 같았다. 나는 ㅂ에게 어떻게 할 건지 물었는데 그는 나폴레옹 루트가 뭔지, 우회하는 발카를로스 루트가 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꼭 읽어보라고 당부했던 프랑스길 관련 책을 전혀 보질 않아서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설명을 해주었더니 괜찮다고 자기는 그냥 나만 따라갈 테니까 '잘 알아서 가달라'고 했다. 빗속에서 출발이 늦은 나도 길게 설명할 여유는 없어서 우회 루트인 발카를로스 길을 찾았다.


그런데, 어제 바욘에서 만났던 한국 아가씨들 대부분이 거리에서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우리를 보자마자 엄청 반가운 소프라노 톤으로 우리를 부르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이들은 한 시간 가까이 생장을 이리저리 돌다가 나폴레옹 길을 찾았는데 빗길이 위험하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내려왔는데 이번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계속 길을 헤매면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가는데 걷다가 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실소를 못 참고 따라오라고 하고 길을 찾아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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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떠나서 비를 맞으며 두어 시간쯤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비가 그치고 아름다운 숲과 계곡이 이어졌다. 어느덧 점심 무렵이 되고 긴장했던 마음도 풀어져서 시장기가 돌았다.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 한편에 배낭을 내려놓고 그제야 찬찬히 뒤를 돌아봤다.

어제 같이 점심 식사를 했던 ㅅㅎ와 ㅂㅇ은 하루 만에 만난 ㅂ과 내 뒤를 바짝 쫓아오고 그 뒤를 ㄱㅎ와 ㅇㅇ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국 청년 둘이 붙어 섰다. ㄱㅎ는 세브란스 병원 간호사인데 일이 너무 고돼서 휴직을 하고 온 길이라고 했고 ㅇㅇ은 우리 중 막내로 대학생인데 휴학하고 순례길에 올랐다고 했다.

그때까지 우리 일행은 여덟 명이었는데 발카를로스 중반에 미국에서 온 중년 한국인 교수와 그의 친구도 우리와 합류하여 우리는 어느새 열 명 가까운 그룹을 이루게 되었다.


모두들 배낭에서 먹거리를 꺼냈는데 끼니가 아니라 대부분 행동식 위주였다. ㅂ과 내가 싸 온 도시락은 커다란 바게트 빵에 각종 야채와 하몽을 듬뿍 넣은 샌드위치였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바게트를 반으로 잘라도 양이 많아서 그걸 다시 또 반으로 자르니 적당한 크기의 샌드위치 여덟 조각이 되었다. 그렇게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으니 다시 힘도 나고 날씨도 좋아져서 모두들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출발할 때 발카를로스 알베르게에 한국인 남자 두 명의 숙박 예약을 해두었는데 그때까지는 아직 프랑스였고 유심을 구입하지 않아서 숙소 와이파이로 연락을 한 것이었다. 이제는 스페인 국경을 넘었고 아무런 통신 수단이 없는 상태라 추가로 숙소 예약을 하기가 어려웠다. 유심이 있다고 해도 아마 산중이라 통신 상태가 원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발카를로스가 가까워오자 숙소가 없는 한국인 청년들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내 뒤를 쫓았다.


다시 비가 내리고 오르막길이 나오자 다들 속도가 쳐졌는데 고도도 상당했다.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했지만 우비를 벗으면 체온이 떨어질 것 같아서 모두 우비를 벗지 말고 입고 있으라고 했다. 뒤따라 오는 속도가 느려서 내가 ㅂ과 나머지 한국인들을 뒤따라 오라고 하고 먼저 숙소를 찾아서 발카를로스에 도착했다.

다행히 알베르게에 여분의 자리가 있어서 우리 일행들의 침대를 확보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다시 거리에 나가 일행들을 기다렸다가 알베르게로 안내했다.

첫날이라 모두 긴장했고 숙소도 걱정이었는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비에 젖은 빨래를 모아서 세탁기에 돌리고 마을 바르에 모여서 추운 몸을 녹이며 와인을 마셨다.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먹을지 몰라하길래 내가 와인과 타파스를 주문해 주었더니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저녁 식사는 제대로 먹고 싶었지만 8시까지 기다려야 해서 다시 바르에 모여 피자와 안주거리를 시켜서 대충 때웠다. 잠을 못 잔 나는 빨리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었지만 다들 더 먹고 싶어 하는 눈치여서 천천히 더 먹고 들어오라고 하고 일어섰는데 모두들 따라 일어섰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무도 스페인 사람에게 추가 주문을 할 자신이 없었고 대부분 유럽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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