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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Jun 01. 2024

교환교수라니, 뭘 교환해?

교환교수 사례 1편

2018년 2학기부터 2019년 1학기까지 1년간 중국 윈난 성의 운남예술대학으로 교환교수를 지내고 온 이야기이다. 


교환교수를 준비하면서 느낀 재미있는 점은 그렇게 교수생활을 오래 했어도 교수도 교환교수에 대해서 모를뿐더러 학교도 잘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반면, 교환학생에 관한 자료는 훨씬 많고 구체적 사례도 찾아보기 쉬웠는데 이는 교환학생은 매년 오고 가는 사례가 많았고 참여 대학의 숫자도 교환교수 건에 비해 월등했기 때문이다. 교환학생 제도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국제 교환학생 교류 협약 체결이 되어있는 대학 간에 서로 정해진 숫자 안에서 학생을 교환하여 각 대학에서 1학기나 2학기 동안 일정 학점 내의 수업을 수강할 수 있도록 하며 이렇게 취득한 학점은 학생의 졸업 이수 학점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교류가 활발한 대학들은 외국에서 방문한 국제 교환학생들이 택할 수 있는 전용 교양, 문화 강좌를 개설해 두고 이들 학생들이 지낼 수 있는 기숙사나 교외 숙소를 알선해 주며 주말이나 공휴일, 방학 기간에는 교환학생들이 방문국의 문화 체험과 관광 등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과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나는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교환학생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식견을 넓히고 해외 대학의 수업을 경험해 보라고 권장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교환 '학생'의 경우이고...

교환 교수는 일단 우리 학교에서도 다녀왔다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정년 트랙 전임 교수는 5-7년마다 1년간 수업을 하지 않고 개인 연구로 사용할 수 있는 연구년 (이를 안식년이라 부르기도 한다)이 주어지는데 이 기간 동안 국내에 체류하면서 연구활동 시간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해외에 나갔다 돌아오는 교수들도 있다. 교환교수가 아니라 그냥 개인 자격으로 자유롭게 1년의 기간을 사용하다가 학교에 복귀하면서 연구 결과물로 논문이나 저서, 또는 작품을 제출하는 것인데 1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외국인이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아서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기간 동안 머무르다가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게 아니라면 1년 체류는 해당 국가의 영주권이 있는 교수들이나 가능한 방법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어렸던 첫 연구년을 국내에 머물면서 보냈는데 두 번째 연구년에는 가족 모두 해외에서 생활하는 경험을 해보고 나도 외국의 대학에 교수 자격으로 체류하면서 연구도 하고 수업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저기 구글링을 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당장 우리 학교로 해외대학 출신 교수가 교환교수로 와 있는 이가 없었다. 몇 년 전에 중앙아시아 지역 여성 교수가 교환교수로 1년간 체류하다가 돌아갈 때가 되자 체류 기간 연장을 원했으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서 아쉬움을 보이며 돌아갔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우리 학교를 방문한 교환교수 사례의 전부였다. 


겨우 찾아낸 국내 교수의 해외 교환교수 사례는 10인 10색 정도가 아니라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판이하게 다른 경험들인 듯 보였다. 제각각 다른 정보라도 세세히 공개하는 사례가 드물었고 이는 각 교수가 교환교수 초청을 받을 때의 조건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마다, 교수마다, 전공마다 매번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교환교수 사례 중 우수한 사례는 미국 정부에서 보증하고 지원하는 '풀브라이트 Fullbright 연구 교수 제도'일 것이다. 비슷한 제도를 일본에서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두 제도는 미국과 일본 정부에서 자국으로 연구를 하러 오는 해외 교수들에게 체류비와 연구비, 의료보험 등의 현금을 지급하며 일단 선정되면 연구자가 선호하는 대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연구지원 제도라 많은 교수와 연구원들이 지원하지만 모집인원은 제한적이라 선정되려면 꽤나 성의를 들여서 연구계획서를 쓰고 원어 인터뷰를 통과해야 하고 연구 내용도 초청국의 국익에 보탬이 되는 분야여야 뽑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처럼 뛰어난 풀브라이트를 나는 가볍게 후보대상에서 제외시켰는데 이유는 학부와 대학원을 미국에서 나온 나로서는 미국 대학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더 큰 이유는 미국의 높은 물가 때문에 4인 가족이 체류하려면 아무리 연구 지원비를 받는다고 해도 내 연봉을 고스란히 털어 써도 모자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들 둘은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미국의 국제학교 등록금 두 명 분과 미국 생활에 필수적인 아내와 내가 사용할 자동차 두 대 구입비, 집세, 생활비를 생각하면 지내는 동안 매우 쪼들리는 생활을 하거나 빚을 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던 것이다. 


호주로 연구년을 다녀온 타 대학의 교수가 교환교수를 알아보고 있는 나에게 이메일 주소를 하나 건네주었다. 호주 대학에 있는 한국인 교수인데 조건이 맞으면 초청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조건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교수는 아마도 아직 테뉴어(정년보장 종신교수)를 받지 못한 것 같은데 그래서 매년 연구실적을 채워야 하는 부담이 꽤 큰 것 같았다. 그래서 자기가 학과에 건의해서 나를 방문학자로 초청하게 알선을 해줄 테니 와 있는 동안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고 자기를 공동저자 혹은 교신저자로 올려달라는 것이다. 조건이 아니라 거래였고, 이런 거래는 비난을 면치 못할 거래이고 연구 부정행위에 해당할 것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공동 연구를 해보자고 제안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자기는 가만히 앉아서 숟가락만 얹겠다는 뉘앙스어서 사양했다. 


또 한건의 사례는 내가 속한 단과대의 학장이 시카고로 다녀온 사례인데 이 건은 아예 처음부터 해당 학교에 사례를 지불하고 초청을 의뢰한 경우였다. 사립 예술대인 해당 대학은 학교발전기금에 해당하는 얼마쯤의 액수를 학교에 납부하면 학교에서 납부자에게 방문학자 자격의 비자를 발급하도록 해준다는 것인데 논문 대필보다는 낫지만 이 역시 돈 주고 비자를 사는 것과 다르지 않고 미국 대학이라는 것과 생활비 비싼 시카고라는 점에서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연구년 신청과 방문할 해외대학을 정해야 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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