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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May 28. 2024

세상 상관없는 두 가지; 달리기와 나이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50대에 달리기에 입문한 나는 내가 속한 달리기 클럽의 주축 멤버들이 3, 40대라는 점에 늘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10km와 하프 코스에 여러 차례 나가보고 드디어 올해 초에는 서울 동아마라톤에 참가해서 첫 풀코스를 달려 본 나는 달리기로 이제 초보 딱지를 떼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젊은' 회원들과 인터벌도 하고 함께 대회에 나가기도 하지만 나보다 늦게 입문해서 금방 속도를 올리면서 나를 추월하고 기량이 월등해지는 모습을 보면 내 기록과 연습량이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30대는 말할 것도 없고 40대에 달리기를 시작하더라도 그들 중 대부분은 첫해에 네 시간 이하의 성적으로 풀 코스를 달리고 둘째 해에는 당연한 듯이 3시간대 이하로 골인하는 '써브 쓰리' 주자가 된다. 

입문한 지 둘째 해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풀코스를 달리고 그것도 다섯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겨우 마친 나 자신이 대단해 보이기보다는 '너무 늦은 나이에 시작했구나'라는 생각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나이에 대한 나의 콤플렉스는 매주 모이는 달리기 모임에서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선수급 기량을 갖춘 3, 40대 회원들은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3인치 쇼츠를 입고 섹시한 어깨와 등 근육이 보이는 싱글렛을 즐겨 입고 나온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몸을 푸는 동안에도 나는 그들을 염탐하고 내 모습과 비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런 내 모습이 찌질하고 부질없어 보이지만 억제가 잘 되질 않는다. 연습이 시작되면 개인별 속도에 따라 빠른 순으로 1, 2, 3, 4그룹으로 나누어 뛰는데 4그룹인 나는 1그룹의 적토마들이 트랙을 달리는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들의 젊음과 싱싱함을 부러워하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연습이 끝난다. 헉헉대며 트랙을 돌다가 멈춰 선 나는 그들이 돌아가는 모습, 그들의 육감적인 허벅지 근육을 보면서 숨을 몰아쉬며 내뱉는다.  

'좋겠다.'

 

400미터 트랙을 전력질주하다가 속도를 줄이고 다시 질주하는 인터벌 훈련을 하는 그들은 좋은 초지에서 잘 키운 준마들이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인터벌 세 바퀴부터 정신을 못 차리고 다리가 풀려버리는 늙고 지친 비루먹은 로시난테였다. 툭하면 병들고, 조금 뛰면 지쳐서 스텝이 꼬여버리는...

아는 영화감독님이 한 분 있는데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이분이 페이스북을 통해서 자신의 돌아가신 부모님을 언급할 때마다 부모를 향한 그의 절절한 사랑이 가식 없이 묻어나고 있어서 그가 회상하는 내용과 관계없이 내 부모를 떠올리게 된다. 한 번은 그가 오래된 흑백사진을 올려 보이면서 자기 아버지가 50대 때 모습이라면서 '우리 아버지가 이때 얼마나 젊었는지'를 자랑스럽게 들려주었다.  그 사진을 보니 과연 교사셨던 그의 아버지가 열정적으로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모습이셨었는데 비슷한 시절의 내 아버지 모습이 연상되기도 해서 세상의 아버지들은 70년대에 모두 비슷한 모습이었나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지금의 내 나이인 두 분의 아버지 모습을 본 후 바로 든 생각은 '젊다'라는 것이다. 

50대는 젊은 나이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젊은' 50대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러네, 나 젊은 나이 50대 맞네!


10년 뒤 내가 60대가 되었을 때 나는 10년 전의 지금 내 모습을 돌아보며 '그때는 내가 얼마나 젊었었는지'하고 회상할 것이다. '그때는 풀코스건 하프코스건 일정만 맞으면 무조건 대회 참가 신청을 하고 달리러 나갔던 시절이었지' 하면서 지금의 나를 회상할 것이다.  

50대의 나이가 달리기에 적절한지, 유리한지를 따져보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정답도 찾을 수 없는 문제이다. 중요한 건 50대에도 달리는 게 감당이 되고 달리는 게 즐거워서 하루 걸러 매주 서너 번씩 10km를 달리는 일상이 몸에 배었다면 달리기를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건강하고 젊게 50대를 보내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3, 40대가 50대보다 잘 달리는 것은 당연하다. 3, 40대는 20대보다 더 빠르지는 못할 테고, 3, 40대는 10년이 지나면 4, 50대가 될 것이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달리기가 좋으면 열심히, 즐겁게 달릴 일이지 거기에 몇 살이고 몇 년생인지 하는 쓸데없는 나이 타령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으련다. 나는 어제 달렸고 내일도 달릴 것이고 달리면서 들리는 내 호흡과 내가 가르는 바람소리에 기분이 좋아질 것이고 집에 돌아와 땀을 닦으며 즐겁게 오운완!을 외치며 출근 준비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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