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사용하여 긴장감을 유지하고 덩달아 정신까지 맑아지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는 달리기는 알아갈수록 놀랍고 신기한 운동이었다. 지구상의 동식물들은 생존을 위해 몸을 사용하고 적절한 섭식을 통해 항상 몸이 먹이를 구해오는 일에 달려 나갈 수 있는 상태로 준비시킨다.
수렵 생활과 맹수들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난 인간은 그러나 아직도 달린다. 달리지 않아도 주어진 업무를 마치면 적절한 봉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달릴 필요가 없고 퇴근길에 공격해 오는 사자를 피해 달아나지 않아도 되니까 역시 뛸 이유가 없어졌다. 이제 막 떠나려는 전철이나 버스를 잡아타기 위해 잠깐을 뛰거나 불이 꺼지려는 신호등 때문에 몇 초쯤을 허둥지둥 뛰어보는 정도가 인간이 뛰어야 하는 이유의 대부분일 것이다. 이렇게 뛸일이 없어진 인간은 그래서 비대해졌다. 반면에 아직도 야생동물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먹이를 위해서, 또는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서 달린다. 비만한 치타나 배가 나온 다람쥐를 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매일 전속력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고양잇과 동물들이 사냥할 때의 속도는 대단하다.
달리기의 대표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이 달리는 모습은 빠르기도 하지만 정말로 아름답다. 육중한 코뿔소가 지축을 울리며 달리는 모습에는 경외심마저 들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를 능가하는 달리기 명수가 있으니 바로 인간이다. 얼핏 나약해 보이는 인간은 동물과는 다르게 두발만 사용하고 다리나 엉덩이 근육이 특별하게 발달해 있지도 않은데도 잘 달린다.
연습만 열심히 한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한 달 안에 한 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고 거기서 중단하지 않고 더 노력한다면 두 시간, 세 시간 이상까지도 달릴 수 있다. 나는 생애 첫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네 시간 40분쯤을 달렸는데 (힘이 들어서 걸은 시간도 섞여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달릴 수 있는 동물은 놀랍게도 인간뿐이다.
말도 잘 달리고 치타도 잘 달리지만 그들은 인간처럼 오래 달리지 못한다. 특히 순간적인 스피드가 엄청난 고양잇과 동물이나 늑대, 말 들은 전속력으로 냅다 달리다가는 한 시간도 못 달리고 펴져버리기 일쑤이다. 그들은 달리면서 올라간 체온 조절을 위해 배출하는 땀이 제대로 나올 수 있는 땀구멍이 가죽과 털로 덮여 원천적으로 오래 달리기가 불가능한 구조이다. 사람은 이들과 비교할 때 속도는 느리지만 온몸의 땀구멍으로 체온조절을 하며 계속 달리는 것이 가능하다.
인류 최초의 직업이랄 수 있는 사냥은 그래서 가능했다. 뛰어난 명사수가 화살로 동물의 급소를 명중시켜서 죽이거나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글레디에이터 급 장수가 사자의 몸통위에 올라타서 목을 잘라 숨통을 끊어버리는 식의 사냥은 만화에서나 가능하다. 우리의 조상들이 했던 사냥은 혼자서는 맞서기 어려운 동물을 포획하기 위해 여러명으로 팀을 이루어서 적당한 돌이나 창 등의 무기로 공격을 한 뒤 무리 지어 쫓아서 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쫓다보면 피를 흘리며 달아나던 짐승은 한 시간도 못되어서 지쳐 쓰러지게 된다. 그제야 쓰러진 동물의 숨통을 끊어 고기를 구하는 수렵이 완성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잡은 동물을 먹이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동물의 가죽은 보은을 위한 옷감으로도 요긴했다. 그런데 고대의 제사장이나 종교행위를 위해서는 창이나 칼자국이 나지 않은 깨끗한 가죽이 필요하기도 했는데 일부 인디언 종족들은 흠 없는 짐승의 털가죽을 구하기 위해 처음부터 짐승을 오로지 달리기로만 쫓아가서 지치게 한 뒤 죽여서 최상품의 털가죽을 구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간은 느리지만 오래 달릴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수렵 방법이다.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달리다가도 수분 공급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오래 달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물병을 들고 달리거나 요즘의 마라톤 대회처럼 5km마다 급수대가 설치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인간은 동물들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장거리를 달릴 수 있다. 달리는 중간에 필수적인 수분 공급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원활한 땀 배출로 인한 체온 조절 기능이 인간이 결국 달리기라는 종목에서 다른 종류의 동물들을 제압할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