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긴 존재
대회에는 내 돈을 써서 나가고 거기서 우승한다고 해서 크게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멀리 달려도, 아무리 극한의 상황을 넘기더라도 그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은 즐거움 말고는 없다.
지구최강 장거리 달리기 선수
지구력이 가장 좋은 포유류로 흔히 꼽히는 동물은 '인간'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동물들보다 느리다. 시속 100킬로미터로 사막을 가르는 치타, 긴 뒷다리로 깡충거리며 도망가는 토끼, 또한 말은 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달린다. 그런 동물들 앞에 인간은 헐떡이고 땀 흘리며 느리게 따라간다.
하지만 장거리로 시선을 옮기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몇 분이 지나고, 몇 시간 뒤에는 자동차만큼 빠른 치타는 금세 지쳐버렸고 말은 물을 찾느라 멈춰 섰다. 그 와중에도 인간은 온몸이 땀으로 젖더라도 느리지만 계속 나아가고 있다.
왜일까?
인간은 연약하게 보이지만 장거리 주행을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지구력 머신"이다.
두 발로 걷는 직립보행은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 오랜 시간 동안 움직일 수 있게 해 준다. 발바닥의 아치 구조와 강한 아킬레스건, 유연한 관절과 큰 엉덩이 근육은 달리기 동작을 견고하게 지탱한다.
더불어 전신에서 흐르는 땀으로 체온을 조절할 수 있는 드문 동물이기도 해서 특히 더운 환경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 사막에서 인간은 사냥개보다 오래 버틸 수 있다.
이러한 신체 조건은 오랜 시간 동안 생존 전략의 일부로 작동해 왔다.
선사시대 인류는 창이나 덫 없이도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는데, 그 방법은 별 거 없었다.
그냥 무식하게 추적하고 달리는 것이었다.
사슴을 잡기 위해 초원 위를 몇 시간이고 뛰어서 쫓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쫓기는 동물은 결국 과열로 쓰러지고 인간은 그 동물을 제압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속도보다는 인내력이 무기인 셈이다.
달리기라는 마약
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진다. 어떻게 생각하면 달리기는 고문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달리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너무 즐기고 있다.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오래 달리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도대체 인간은 왜 달리면서 즐거워할까?
일단 달리기가 즐거운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신경화학적 반응이다.
뛰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달리기를 일정 시간 지속하면 뇌에서 엔도르핀,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알다시피 기분이 좋을 때 분비되는 물질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몸은 달리기 자체가 즐겁다고 받아들이나 보다.
이번에 달리면서 이것저것 관심 있게 찾다보니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상태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강도 높은 달리기 이후 찾아오는 쾌감과 평온함의 상태라고 한다. 육체의 피로조차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겪어본 사람들의 말로는 도취감에 가깝다고도 한다.
일종의 마취제이자 보상 시스템인데, 이는 인간의 뇌가 달리기를 긍정적인 활동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이게 마약이 아니고 뭘까 싶다. 러너스 하이는 유명한 마라톤 선수도 겪어보질 못 했다고 하는데 어떤 느낌일지 꽤나 궁금하다.
하지만 단지 화학 물질 때문에만 즐거울까?
인간은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동물이다. 달리면서 자신의 몸을 느끼고, 심장의 박동을 듣고, 숨을 자각하며,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는 것이다. 정적으로 굴러가는 현대 사회에서 달리기는 원시적인 본능의 회복이 아닐까?
또한 달리기는 단순하지만 심리적 해방감을 준다. 생각이 많을수록, 감정이 복잡할수록 달리기는 그 모든 생각들을 단순하게 만든다. 몸은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상쾌해지는 기분이 든다.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생각이 명확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본능적으로 달리도록 설계된 존재인지 모르겠다. 달리기를 통해 사냥하고, 생존하고 삶을 이어온 수십만 년의 진화의 유전자가 우리 몸속 깊숙이 흔적을 남겨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빠르지는 않지만, 끈질기고 오래.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계속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