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지긴 합니다
수영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높은 습도와 뜨거운 햇빛을 보면 정말 여름 한가운데로 온 게 실감 나는 요즘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이렇게 덥거나, 혹은 반대로 너무 추운 날은 야외활동을 하지 말라고 배웠는데 그래도 계속 나가서 뛰어야 하는 나에겐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면 뭔가 찝찝하고 스트레스까지 받고 있는 내 모습이 웃기다.
해가 떠있는 시간에 뛰면 죽을 수도 있을 거 같아서 4시 반에 일어나서 부지런히 밖으로 나와야 한다. 열대야 때문에 에어컨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날씨에 달리기가 뭐라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온다.
분명 어제 잠들기 전에는 내일 빨리 뛰고 싶단 생각뿐이었는데..
어스름한 느낌이지만 여름이라 그런지 해 뜨는 속도가 놀랄 만큼 빠르다. 잠깐사이에도 순식간에 밝아진다. 밤사이 지면이 약간 식었다 해도 한낮에 뜨겁게 달궈졌던 공기는 여전히 미지근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여름의 풍경은 창밖에서 봤을 때만 그림처럼 맑고 아름답다. 분명 집에서 창문을 열어봤을 때는 시원한 느낌도 있었던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보다.
아직은 해가 막 뜰까 말까 하기 때문에 상쾌한 '척'이라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습도, 날씨앱에서 알려주는 90%에 육박하는 그 습도는 발은 한 발자국 내딛자마자 온몸을 끈적하게 만든다. 하.. 뛰기 싫다.
어쨌든 새벽이 좋네
이렇게 더울 땐 그냥 "수영이나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열치열은 글로나 멋있지 정말 땀 한 방울만 흘러도 짜증 나는 날씨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이렇게 꾸준히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은 뛰는 거밖에 없는 것 같다.
덥긴 해도 밖에 나가보면 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 근데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어쩐지 온화해 보인다. 궁금해서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들은 더운 날에 어떻게 러닝을 하는지 방법을 찾아봤다.
"여름 러닝 꿀팁"
이러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을 것 같았는데 딱히 그런 거 없고 그냥 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역시 러닝은 생각을 많이 하면 안 되고 그냥 뛰면 되는 거 같다.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얘기하던데,
첫 번째. 새벽에 뛰던지 해 지고 뛰어라.
두 번째. 오버하지 말고 러닝머신으로 뛰어라.
세 번째. 장비빨 활용. 웻타월이나 넥쿨러 추천
돌고 돌아 도달한 결론은 나는 그냥 새벽에 넥쿨러만 추가해서 뛰어야겠다는 결론이 났다.
가끔 러닝머신 위에 올라갈 때도 있지만 러닝머신은.. 21세기 고문기구다.
그 위에서 30분을 뛰는 건 너무 고통스럽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면서 꿀팁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줄 남겨주면 좋겠다.
이 기록은 딱 일주일 차이다.
원래 페이스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더위 한 방 먹고 페이스가 훅훅 떨어진다. 늪에 빠진 거 마냥 다리가 엄청 무거워진다. 걷는 둥 뛰는 둥 하지만 끝까지 내가 목표로 한 시간을 채우긴 했다.
달릴 때 멘탈 변화
1. 재밌다. 상쾌하다
2. 조금 힘들다
3. 많이 힘들다
4. 적응하니 괜찮은 듯?
5. 아까 그 말 취소
6. 그냥 걸을까?
7. 거의 다 왔다
8. 완료! 오늘도 해냈다!
9. 다음엔 더 뛰어야지!
무한반복
요즘 뛸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뛸 때는 고통스럽지만 뛰고 나서 좀 괜찮아지면 또 뛰고 싶어지는 게 러닝도 중독이 되나 보다. 보통 이럴 때 부상 조심하라던데...
그냥 뛰자
그렇다고 여름 러닝이 꼭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끔찍하게 덥고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지만 몸이 움추러드는 겨울보다는 부상의 위험이 적다. 챙길 게 별로 없어서 옷이 가벼우니 빨래도 덜 나온다는 이런 소소한 장점도 있다.
게다가 청량하고 녹음진 여름풍경은 덤으로 따라온다. 어떤 사람은 샤워한 것처럼 땀이 쏟아지는 기분이 너무 좋다고도 하는데 난 아직 그게 좋은 단계는 아닌가 보다.
씁씁! 후후! 얼굴이 뜨거워지고 땀샘은 폭발한다. 손바닥에서도 땀이 나서 축축해진다. 분명 새벽에 나왔어도 점점 떠오르는 해는 왜 이렇게 빠른지 저주스럽기까지 하다.
뛸 때는 죽겠다 싶을 정도였는데 그래도 다 뛰고 나면 여러 가지 기분이 든다. 뭔가 사우나에서 땀을 쫙 빼고 나왔을 때의 시원한 느낌도 들고 숨이 차도록 수영한 다음에 오는 허기짐도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도 여름 러닝을 계속하게 만드는 단 한 가지의 희망은 있다.
여름에 뛰는 러너들이 모두들 입을 모아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름을 버티면 가을에 레벨업한다."
이 고비를 넘기면 가을에는 놀랍도록 성장한다고 하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더운 날 물 먹은 솜처럼 축축하고 무겁게 가라앉았던 몸이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면서 조금씩 가벼워지고 그 순간 페이스가 살아나는 것 아닐까 싶다. 여름에 뛰는 건 버겁지만 천천히 가을을 맞이하고, 나 자신이 놀랄 수밖에 없는 성장을 어서 경험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