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회사를 다닐 거라면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
준비 없는 퇴사 후 자기 규율과 안정성의 확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퇴사를 위한 입사' 였는데, 자칫 잘못하면 퇴사가 목표인 마음가짐은 현재의 상황을 노잼이라 비관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퇴사 준비를 하며 다니는 이 회사를 나름 즐겁게 다니고 있다.
"이왕 다시 회사를 선택해야 한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흥미 있는 일을 하자. 이 전까지의 커리어는 무너져도 좋아. 연봉이 낮아져도 괜찮아.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야."
이때부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들여다보게 됐던 것 같다. 마음은 향하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외면했던 꿈이랄까. 나는 그저 꿈을 좇지 못한 일개 문과생이었는데, 늘 내 마음이 향한 방향을 요약하자면 '예술'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를 돌아보면 사진 찍고 보정하는 것,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 하루 종일 영화 보는 것, 피아노를 치고 음악을 듣는 것, 공상에 사로잡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내 스타일의 옷을 사고 입는 것 이런 것들을 좋아했다. 뭔가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것, 철학적이고 모호한 그런 것들...
그렇다면 흥미만 있는 내가 해당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생각하며 취업 공고 사이트를 열심히 뒤졌다. 마음이 향하는 곳들은 사진/공간/미술/패션 관련 기업들이었다. 조금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직무가 있으면 지원했고, 특히 지금의 회사를 만난 건 우연과도 같았다.
미술 관련 기업의 인하우스 마케팅 직무라니.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교집합이 맞물린 곳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블로그를 운영하고, 휴학 기간 동안 작은 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었다. 졸업 후에는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했고, 퇴사 후 6개월간은 블로그 관리 대행 등의 콘텐츠 작업을 했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마케팅, 콘텐츠 에디팅 이런 것들이었다.
인하우스 마케터는 그 기업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필수이다 보니 덩달아 일 속에서 예술이 스며들게 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은 일이기에 대부분은 예술적이거나 아름답진 않지만,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이야기들은 내가 즐기며 다니기에 충분했다.
결국 내 관심사와 흥미를 쫓았더니, 회사를 다니면서도 고통스럽지 않게 일한다. 전처럼 견뎌내는 기분이 아니라 즐기며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 배울 수 있는 업무적 지식, 커뮤니케이션 스킬, 복지와 안정적 급여...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있는 동안 충분히 누리고, 제대로 준비해서 후련하게 독립하는 일만 남았다.
이왕 회사를 다닐 거라면 나부터 돌아보고, 그런 나의 흥미와 교집합이 있어 견디지 않고도 다닐 수 있는 곳을 골라보는 전략. 무작정 연봉이나 기업 규모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성공적인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