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녹 Feb 16. 2022

타투를 지운 것의 의미



20대 초반,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내 몸에 타투를 새겼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나는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음악 듣는 일을 사랑한다.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도 새삼스러운, 그냥 늘 당연하게 스며있는 나의 일부다 음악은.

당시 내가 했던 타투는 오선지 위에 음표가 그려진.. 뭐 대략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지는 타투였다.


많은 고민 끝에 했기에 후회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6년 정도 지나니 처음의 말끔했던 라인들은 시간과 함께 번졌고 경계 없이 뭉개졌다. 

당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 앞에서 삶의 방향과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답도 불확실하게 뭉개졌던 터라 딱 하나 새겨진 내 몸속 타투가 더 미워 보였다. "너 지금 이런 상태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나의 마음은 타투를 쳐다보지 않다가, 가리다가, 지우자는 결심까지 이어졌다.


타투를 새기는 건 잠깐의 시간이었는데, 지우는 건 몇 배의 세월이 필요했다.

6주 간격으로 레이저를 쏴대며 조금씩 조금씩 내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과정을 2년 가까이해야 했다. 타투를 지우기로 결심하고 2년 정도 지난 지금, 내 몸에 있던 타투는 어느새 희미한 흔적만 남은 채 사라졌다. 


나에게 타투를 지운 것은 어떤 상징성을 주었다.



경계 없이 뭉개지고 번져있던 것과의 이별


타투를 지울 때쯤 나는 뭉개지고 번져있던 나에 대한 질문들의 답을 찾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움직였던 편린들을 좇아 하고 싶은 것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했다. 


타투를 쳐다보지 않던 시간들은 나를 들여다보지 않는 시간들이었고,

타투를 가리던 시간들은 내 마음속 이야기를 가리던 시간들이었다.

타투를 지우기로 한 결심은 정처 없이 헤매던 내 모습에서 벗어나기로 한 결심과 맞물렸다.


검은 색소가 흐릿해지는 서서히의 세월 동안 나의 불확실함도 서서히 흐릿해지고 있었다.


나는 이제, 타투가 새겨져 있었던 그 부위를 응시할 수 있다.

'잘 살다 간다, 잘 살아'라고 인사하며 조각나 흩어져 나간 검은 색소들에게 나 또한 세차게 손을 흔들어 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 고양이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