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태우듯 나를 태워 얻은 이름

by 현안 XianAn 스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사업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 주변에는 베벌리힐즈, 할리우드, 맨하탄비치 등 좋은 동네의 고급 저택에 사는 부유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영상으로만 보던 세계가 제 일상 속에 펼쳐졌던 시기입니다. 그들과 가까워지며 알게 된 건, 겉으로 보이는 삶과 내면의 삶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고급차를 타고 아름다운 집에 살아도, 가까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병으로 고통받고, 가족과의 갈등에 힘들어하며, 자기애와 외로움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이룬 것처럼 보이는 삶'을 살지만, 각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번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젊은 시절엔 하루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밤낮 없이 일에 매달리며 경쟁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다 결국 몸은 망가지고, 마음은 메말라 버립니다. 저 또한 그런 삶을 살았고,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속은 공허함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돈이 많든 적든, 우리가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산다 해도 이런 고통들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욕심을 따라 명예를 구하지만, 이름이 드러날 때쯤이면 몸은 이미 늙어 버린다"고 말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고, 세상이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합니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같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세상에 퍼질 무렵에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습니다.

물론 명예가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얻는 것'과 '구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명예가 따라오는 경우와 명예를 따라가는 경우는 삶의 방향부터 다릅니다. 훌륭한 사람은 명예가 와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지만, 평범한 사람은 명예를 갈구하다가 스스로를 잃습니다.

특히 출가한 스님이라면, 더더욱 그 경계에 민감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세속 명예를 탐하면서 마음을 닦지 않으면 헛수고에 몸만 지칠 뿐'이라 하셨습니다. 제 스승님의 스승님인 선화 상인 역시 여섯 가지 계율 가운데 하나로 "구하지 말라(不求)"를 강조하셨는데, 이는 단지 명예만이 아니라 모든 세속적 욕망에 대한 경계심을 뜻합니다. 스님들에게 이 부분은 매우 민감하고 위험한 것이기도 합니다. 자칫하면 그런 달콤함에 빠져, 애초에 스님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잊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출가 후 한국에서 지내다가 처음으로 다시 LA를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사업하던 시절 알게 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해 이미 집도 갖고 있었고, 지금은 부유한 시부모를 가진 젊고 멋진 남편과 아이까지 있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고에 대한 공포, 병에 대한 불안으로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모든 걸 다 이룬 듯 보였지만, 삶은 위태로웠고 불안감 속에서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요즘 많은 이들은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매일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 때문에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잊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정신적, 영적 웰빙은 다른 이들의 선망이나 평가, 기억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명예도, 평판도, 기억도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은, 우리가 이 삶을 얼마나 진실하게 살았느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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