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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Oct 05. 2021

망상, 우울, 질병 False thinking

영화 선사의 법문 No Cut

참고: 영화 선사의 법문 2017년 7월 15일 

False thinking, Depression, Illness 

https://youtu.be/E1tblay3M3o

아래 글은 영화 스님의 법문을 듣고 한국어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수정할 부분이 아직 많이 있으나, 이걸로 전체적인 법문의 맥락은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여러분은 소림사의 쿵푸를 좋아하나요? 사실 중국 전통 무술인 쿵푸도 선 수행의 일종입니다. 우리의 선종 1대 조사인 달마대사가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는 승려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쿵푸를 만들었습니다. 좌선이란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고요히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학생이 오면 가장 먼저 앉아서 하는 방법부터 가르칩니다. 앉아서 하는 방법이 제일 높은 형태의 참선법 중 하나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선을 이해한 후엔 참선이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걸으면서도 명상할 수 있고, 슈퍼마켓을 가면서도 명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불교에선 앉는 것, 걷는 것, 눕는 것, 서 있는 것도 모두 다 선(禪)이라고 말합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런 게 정념(正念)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그 말도 틀리지 않습니다. 왜 이런 모든 것이 다 선(禪)인가요? 선은 염불하든, 염주(주력수행)를 하든, 호흡으로 하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잡념이 없음을 뜻합니다. 평소 우리 마음은 잡념(errand thoughts)으로 가득합니다. 잡념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왜 잡념이 생길까요? 우리가 말하고 있을 때, 앉아있을 때, 걷고 있을 때 왜 갑자기 이런 잡념이 올라오는 걸까요? 첫째로 불교에서는 이를 바로 업장(業障)이라고 합니다. 그 의미는 우리가 뭔가를 하고자 하는데, 저항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건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로 누가 와서 시끄럽게 한다면 그런 걸 외부적인 장애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집중하는 걸 방해하기 때문에 업장입니다. 둘째로 번뇌(報障煩)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명상하려고 앉아있는데, 갑자기 “아, 정말 쑤신다!”라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걸 번뇌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아프거나 쑤시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번째는 보장(惱障)입니다. 이런 이유로 잡념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우린 잡념이 일어날 원인이 다양하게 있습니다. 

다시 요약하면 우리는 외부적 장애를 받고, 그리고 내면적 장애 즉 번뇌가 일어납니다. 기분이 안 좋은 겁니다. 그리고 보장이란 업보에서 오는 것입니다. 과거에 다른 이들을 방해했기 때문에 이제 그들이 여러분을 방해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이렇게 망상이 세 가지 주요 원인으로 인해 일어납니다. 정념을 하든, 하지 않든 또는 염불을 해도 망상은 일어납니다. 앉아서 명상해도 망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걸 참선이라고 부를까요? 왜냐하면 이런 잡념이나 망상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 참선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쫓아가지 않는 것이 바로 선(禪)의 과정입니다. 그러니 예를 들어 양배추를 사러 슈퍼마켓에 간다고 합시다. 망상이 일어난다고 합시다. 누군가 앞으로 치고 들어와서 제일 상태가 좋은 양배추를 확 집어가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명상입니다. 

명상하고자 앉을 때마다 망상을 관찰해야 합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걸 보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매우 중요합니다. 번뇌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못하면 20년, 30년 명상해도, 뛰어난 스승에게 배운다고 하여도 망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망상은 원래 일어납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들에 반응하기 때문에 그것에 연루되는 겁니다. 습관적으로 이런 생각에 응하기 때문에 생각이 일어나면 그걸 꼭 쥐게 됩니다. 그게 우리의 약점입니다. 

그래서 참선 수련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가장 먼저 이런 생각들을 좇는 것부터 멈춰야 합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상관없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중요한지 상관없이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심지어 여러분에게 제일 중대한 일에 대해서도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선입니다.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걷는 게 명상이란 게 뭔가요? 마음을 관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계속 보고 또 봐서 망상에 더는 반응하지 않을 때까지 보는 겁니다. 예로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 “아~ 기분이 안 좋아”라는 생각이 일어나는 게 꽤 흔한 일입니다. 그건 그냥 망상일 뿐입니다. 그걸 따라가지 마세요. 그걸 믿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만 하세요. 만일 그렇게 하실 수 있다면 우울해지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왜 우울한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들이 그런 생각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앉아서 '오 마이 갓! 난 절대로 할 수 없을거야', '희망이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우울의 생각입니다. 그걸 인지하는 겁니다. '맞아. 내가 절에 2주나 왔는데, 망상이 아직도 이렇게 많다니! 진짜로 희망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게 우울의 생각이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바로 보장(Retribution obstruction) 때문입니다. 하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망상에 반응하는 겁니다. 혼자 힘으로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걸 보장이라고 부르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망상을 따라가면 안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혼자 힘으로 어찌할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를 보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자기 혼자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업보가 찾아오면 참고 견뎌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불교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냥 인식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압니다. 여러분이 명상으로 맨 끝까지 도달하면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진짜로 이런 모든 반응에 끝을 낼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지성에 의존해서 망상에 반응하는 문제를 다룰려고 한다면,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명상은 다음 두 단계와 연관이 있습니다. 첫 단계는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자로 “지(止)”라고 합니다. “지”는 멈추다라는 뜻이고, 산스크리트어로 사마따라고도 부릅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그다음 두번째로 “관(觀)” 즉 위빠사나라고 불리는 단계가 됩니다. 위빠사나는 여러분의 지혜를 열게 해줍니다. 

이게 참선과 다른 명상과의 차이점입니다. 대승 속 위빠사나는 여러분의 타고난 부처의 지혜 즉 근본지(根本智)를 열도록 해줍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부처의 지혜(佛智)를 열게 해줍니다. 대승에서만 불지를 여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도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부처님게에 업보가 찾아오면 망상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그냥 받아드립니다. 그걸로 언짢아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다시 말해서 첫번째 부분은 마음을 멈추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입니다. 즉 더는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지(止) 또는 사마따의 상태입니다. 앉아서 충분히 오랫동안 명상하다보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일시적 상태에 도달합니다. 그 상태는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세가지 장애가 일시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상태를 사마따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히 그 과정을 해부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일시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관 즉 위빠사나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명상 리트리트나 명상 집중수행을 며칠하면 마음이 많이 차분해집니다. 그런 후 직장에 돌아가면 수많은 장애와 문제에 부딪힙니다. 그러면 차분했던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이런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됩니다. 모두 자연스런 과정입니다. 집중 수행하는 동안 마음이 고요해 집니다. 자연스럽게 고요하게 가라앉습니다. 그건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마음의 속력을 늦춥니다. 망상도 덜 합니다. 그후 집으로 돌아갔을 때 문제가 더 많이진게 아니라 문제가 항상 거기 있었지만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문제가 항상 있었으며 새로운 게 아닙니다. 그냥 문제를 더 많이 보게 되고, 더 효과적으로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지혜가 늘어난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명상 리트리트하는 동안 사마따(지)와 위빠사나(관)를 동시에 했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다시 요약해보겠습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마음이 정지한다는 것 즉 사마따는 뭘 의미합니까? 그건 마음이 훨씬 더 빨라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생각이 떠올랐다고 합시다. 그 생각은 머리속 신경계에 있는 정신적 파이프관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작동합니다. 예로 누군가 여러분의 뺨을 때릴려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손을 올려서 막을겁니다. 막기 전에 생각이 마음에서 손까지 내려가는데, “움직여!”. 그런데 생각이 이 파이프관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려야 합니다. 파이프관 속에 생각이 적을수록 더 빨리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간단합니다. 생각이 적으면 마음이 훨씬 예리하고 빨라집니다. 소림사의 무술가도 망상을 잘라내기 위해서 명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빨리 대응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무술가는 모두다 명상합니다. 어떤 분이 명상 리트리트를 다녀온 후 더 많은 생각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더 빨리 볼 수 있고, 더 잘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마따의 두번째 부분이고, 지혜를 여는 겁니다. 마음이 멈추면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지혜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깨닫는 것입니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멍청하고 저급의 인간도 명상을 통해서 깨닫고, 성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모두다 공평한 기회가 있습니다. 도움이 되나요? 그런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더이상 고요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점점 얇아집니다. 그래서 (명상 전) 예전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예전의 병도 돌아옵니다. 그렇게 병이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병이 나는 이유는 마음속 망상 때문입니다. 망상을 최소한으로 하는 게 병을 줄이고 건강을 향상하는 것과 동등합니다. 

이건 간단합니다. 마음만 정지시키면 이런 여러가지 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명상이 중대합니다.

참선을 시작한 초심자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인데, 매일 명상하는데도 이상하게 더 피곤하고 두통이 있어서 걱정합니다. 대게 그런 문제는 참아야 합니다. 그런게 업보입니다. 초심자에게 생기는 이런 피곤함이나 두통은 곧 사라집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통이나 복통과 같은게 가끔 생길 수 있는데, 그런걸 다 업보라고 합니다. 나는 그런걸로 마음이 성가스워지도록 두지 않을겁니다. 사나이처럼 그냥 받아들이세요. 명상하면 더 빨리 없어집니다. 불에 기름을 붓지 마세요. 그냥 알아차리면 관찰만 하고, 일어나게 두세요. 

하루가 너무 느리고 무기력할 때, 하루 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그냥 업보려니 하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냥 단순하게 말입니다. 그러다가 뭔가가 너무 마음을 괴롭게 한다면 명상하세요. 예를 들어 “인생이 너무 무의미해! 사는게 너무 힘들어. 아내가 날 사랑하지 않아. 얘들도 문제야. 날 공경하지 않아. 날 사랑하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일어났다고 합시다.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럴만해서 그런겁니다. 그러니 불평은 그만하십시오. 번뇌로울 필요가 없습니다. 사나이처럼 또는 여장부처럼 받아들이세요. 나는 그렇게 합니다. 받아들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부처님 이야기 기억나시나요? 지혜가 있으면 그냥 업보다라고 받아드립니다. 큰 일이 아니다. 여러분은 혐오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혐오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지혜입니다. 

여러분이 명상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른 이들에 비해 강점이 있는겁니다. 마음은 더 빠르고, 머리는 더 명료합니다. 하지만 그걸 잃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냥 일시적인 경계입니다. 그래서 매일 명상하는게 중요합니다. 매일 명상하면 빠른 마음과 명료한 정신을 잃는데 훨씬 더 오래걸립니다. 이런 모든 기본적인 내용이 여러분 일상에 명상이 포함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 만큼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정신과 육체적 건강에 관하여 모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과소평가되어 있습니다. 병은 이 위(머리)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육체적인 질병은 정신적인 병에서 시작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일어나면, “너무 어둡다. 너무 무서워. 무슨 소리가 났는데?” 이렇게 경직됩니다. 거기서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냥 긴장을 풀어보세요. “딱(테이블을 때린다)” 소리가 나면 어떤가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나요? 그 소리는 이미 사라졌는데, 마음은 아직 거기 매달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가 모욕을 주면 그 모욕은 이미 가버렸는데, 마음은 그걸 붙들고 있습니다. 이건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그냥 떨어뜨리세요. 일어나는 두려움, 걱정은 그냥 알아차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스스로 죽어버리게 두세요. 만약에 팔이 아프고, 당신이 경험이 풍부한 수행자라면, 이 육체적 통증이 진짜라는걸 압니다. 번뇌가 일어난다는 지각조차 없습니다. 그냥 자각만하고, 예로 “왜 이렇게 팔이 아프지?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을까” 우리는 다들 그렇습니다. 그래서 악화됩니다. 하지만 놓아버리면, 자각하고 떨어뜨리는게 문제를 다스리는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그보다도 더 좋은 방법은 명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생각이 있을 때, 명상하면 그 생각은 스스로 가버립니다. 어떤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수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간단합니다. 다른 질문있는 사람? 

청중의 질문: 선정이 무엇을 재는가? 하하하. 

독일인은 참으로 희안합니다. 왜 꼭 재봐야합니까? 집중력? 네 맞아요. 내가 선정이 무엇을 재는지 말해주겠습니다. 단 하나의 단어로 여러가지 많은 치수를 포함합니다. 첫째로 이게 뭘 측정하나요? 복. 맞아요. 또 뭐가 있을까요? 지혜? 네 정말로 그렇죠. 또 어떤게 있을까요? 인내. 우리가 인내가 없으면 지혜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얼마나 빠른지도 측정되죠. 얼마나 빠른지. 뭘 하든지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빨리 반응할 수 있는지, 빨리 소화할 수 있는지, 얼마나 빨리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는지 등. 네 말해보세요.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가?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얼마나 방해 받지 않을 수 있는가. 여러분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더 적은가. 더 높을수록 ??? 방해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집니다. 

이게 기억납니다. 내가 17세의 젊은 아가씨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아가씨가 와서 소리를 지르면서 상황을 난처하게 하려했습니다. 내가 그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어요. 어떤 일을 하나요? 17살인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머리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심하게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제 난 여러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심지어 더합니다. 난 비구이거든요. 여러분이라면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뭘 하겠어요? 내가 지금 묻고 있습니다. 이 아가씨가 들어와서 나랑 맞장을 뜨려고 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그 아가씨보다 훨씬 키도 크고 덩치도 큽니다. 근데 이 아가씨가 나에게 맞서고 있어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뺨을 친다고요?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는 비구승려라서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가씨 모친이 날 고소할거예요. 마크, 딸이 당신한테 소리를 지르고 싶어하면 어떻게 하나요? 딸이 16세, 17세 그런데, 소리를 고래고래 지릅니다. 뭘 하나요? 그만할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요? 너무 이상적인 대답이네요. 받아들인다고요? 아니죠. 받아드리면 사람들이 당신을 판단할겁니다. 얼마나 겁장이 비구승려입니까? 이제 우리가 여기 얼굴마담이 있군요. 그리고 제자들이 “마스터 저 사람은 사실 겁쟁이였어요”라고 말하겠죠. 17살짜리 아가씨를 무서워한다고 말입니다. 뭘 하나요? 누구 아무도 없나요? 흡수한다고요? 뭐.. 글쎄요. 근데 보기에 안좋아요. 여기 17살짜리 얘가 있는데, 좋지 않아요. 제3자가 여러분을 보고는 싸운다고 할겁니다. 얘하고 싸우고 있는거예요. 누구 없나요? 부모로써 지혜가 전혀 없네요. 명백합니다. 사십이수안을 하나요? 무장해제부터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그 얘가 무기을 갖고 공격할 수가 없잖아요. 무장해제를 해야해요. 그리고 분노를 발산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런 경우 먼저 무장해제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야 하고, 분노를 발산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얘기를 할 수 있어요. 이건 또 다른 다르마톡 시간의 주제입니다. 이게 타인을 통제하려는 건가요? 사실 이건 내가 사십이수안을 수행하면서 배운겁니다. 사람들이 와서 여러분을 공격할 때, 우리가 공격을 하면 그들을 해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그들이 공격하면 우리는 그쪽을 해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방어하면 그들을 해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공격할 수 있는 수많은 무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무기를 쓰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무기를 쓰지 않으려면 상대를 무장해제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먼저 무장해제부터 시켜야 합니다. 마치 상대가 큰 칼을 들고 죽이려 들면, 쀼... 하고 ... (안들림) 사십이수안을 외우면 그게 돕는겁니다. 방어나 공격하는게 아닙니다. 이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까하는 것입니다. 나나 너가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직 나를 상대로 그녀, 그녀를 상대로 나라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제3자로 본다고 가정해 본 것입니다. 그들이 보던 말건 무슨 상관입니까. 중요한건 당신과 그 사람입니다. 뭘해야 그녀를 도울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사용 목적에 따라서, 매우 좋은 질문입니다, 이게 방어인지 공격인지가 질문입니다. 둘 다 아닙니다. 우리가 그녀를 공격하는지, 우리 자신을 방어하는 일인지, 둘 다 아닙니다. 우리는 그녀를 돕고 있습니다. 뭘해야 그녈 도울 수 있을까요. 이건 충돌이나 싸움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녀를 돕는 겁니다. 그녀는 지금 곤란에 처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다치게 하려고 합니다. 자신에게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무장해제를 하는 것이죠. 전혀 싸움이 아닙니다. 이건 우리가 뭘해야 그녀를 도울 수 있는가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걱정하는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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