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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Mar 13. 2022

미안하지만 슬퍼서 우는게 아니야.

신입사원 교육의 마지막 날, 새벽 4시

오늘도 8시간째 영상편집 작업 중이다. 어제까지 찍었던 수많은 사진을 편집한 수료 영상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다. 나 역시 고작 3년 차밖에 되지 않은 28살 사원인 주제에 대단한 경력의 선배처럼 신입사원들을 지도했던 지난 2주가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얼마 차이가 안 나는 지도 선배라 교육을 운영하기 어려울 까봐 일부러 2003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도 직접 겪은 것 처럼 이야기하며 동안이라는 말까지 들었었는데, 어떤 신입사원 한명이 페이스북을 찾아내어 나이를 발각 당하기도 했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았던 박사 신입사원들이 허탈해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교육 과정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뒤에 탄로 나서 다행이었다. 다들 친해졌고 웃으며 넘길 수 있었으니까.


신입사원 교육을 주관하는 과장님이 말했었다. 마지막 날 수료식 때 지도선배들도 분명히 울게 될 텐데, 웬만하면 눈물을 참으라고.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얼마나 눈물이 없는 사람인 줄 모르고 저런 말을 하는구나 싶었다. 핑계같은 말이지만 나는 정말이지 울지 않는 사람이다.


새벽 6시가 가까워온다.

교육을 마무리하고 다음 날을 준비하느라 거의 매일 서너 시간 밖에 잠을 못 잤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밤을 꼬박 새웠다. 체력이 바닥이어서 깜빡 깜빡 잠이 든다. 수료식 영상을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편집은 하고 하고 또 해도 손댈 게 있었다. 오후 3시 예정인 수료식 전에도 공식 프로그램이 몇 개 더 있어 점심을 굶고 영상을 편집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오후 3시

어떻게든 영상을 끝냈고 드디어 강의실에서 수료식이 시작됐다. 2주간 교육에 참여한 30 여 명의 신입사원의 옷깃에 직접 회사 뱃지를 달아주며 악수를 주고받았다. 강의실의 불을 모두 다 끄고 수료식 영상을 재생했다. 편집에 20시간이 넘게 걸린, 5분 남짓의 영상이 시작됐다.


신입사원들은 각자의 모습을 보며 깔깔 거리고 웃다가, 오- 하며 감탄도 하다가 작별의 시간에 대한 암시가 나오자 몇몇이 먼저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역시 감동적이었군, 나는 어두운 강의실 구석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조용히 뿌듯해했다. 영상이 모두 끝나자 박수가 나왔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강의장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와 입을 떼었다.


“다들 정말 수고 많았고...” 아, 그런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크흡하고 눈물을 삼키며 몸을 돌렸다. “울지 마세요 선배님!!” 신입사원들의 외쳤다. 모두의 목소리가 섞여 누가 말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슬퍼서 우는 게 아냐. 2주 동안 너무너무 힘들었거든, 고생스러웠던 시간들이 떠올라서 그게 서글퍼서 눈물이 나는거라고.’


나는 예상했던 것 보다도 더 많이, 펑펑 울었다. 그리고 그 눈물이 신입사원들을 자극해서 그야말로 눈물바다가 되었다. 3년 뒤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렇게 울진 않았던 것 같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린다.

그때를 떠올리면 슬프고 아쉬운 마음을 감추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고 되뇌었던 건지, 혹은 정말 슬펐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지워 질 수 없는 사실은 내가 회사 생활 중 유일하게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라는 것이다. 이제 감정의 기억은 희미해졌고 기록같은 기억만 남았다. 강의실에 서서 함께 울던 나, 그리고 너희가 가끔 그립다.




이로부터 3년 뒤, 교육담당자가 된 저자가 수영장에 던져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chanrran/37


작가의 짧은 글이 궁금하다면

https://twitter.com/chanrran




image source: https://unsplash.com/photos/pYWuOMhtc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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