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란 Aug 05. 2022

FM 교육담당자가 수영장에 던져지는 일에 대하여

결론부터 말하자면 FM으로 교육을 운영하면 메인 이미지와 같이
우리나라로부터 멀고 먼 이국 땅,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어느 리조트에서
수영장에 던져지는 꼴을 당하게 될 수 있다.


이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나는 2012년부터 2020년까지 9년 동안 L사의 인재개발원에서 교육담당자로 일했다. 교육담당자를 3~4년 정도 하게 되면 본인만의 교육운영 철학을 갖게 된다. 나는 초반 4년 정도를 정석대로 운영했다. 쉬는 시간이 끝났는데도 들어오지 않으면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리에 앉혔고, 수업 중에 전화를 받으러 나가려는 모습이 보이면 끌어다 자리에 앉혔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교육담당자가 평균 40대 이상의 교육 참가자를 상대하려니 정석이 편했다. 인재개발원 선배들 중에는 소위 ‘융통성’ 있게 교육 운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배들은 어린 교육담당자가 참가자들에게 ‘틈'을 보이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사정을 봐줘야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교육이 엉망이 된다며 나의 태도를 옳다 옳다 칭찬했다.


문제의 수영장 투척 사건이 발생한 해는 2015년이다.

나는 그룹의 예비사업가를 양성하는 MBA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무려 1년 동안 진행되는 대장정의 교육이다. 어깨가 무거웠다. 각 사에서 선발된 뛰어난 인재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참 열심히 일했더랬다. 워라밸은 없었고 평일 저녁에서 주말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이 '어떻게 하면 더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설계하고 운영할까?'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었다.


교육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성실히 운영하고자 했고 그게 참가자들보다 한참 후배인 내가 보여야 할 중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원칙주의인 태도 때문에 투닥투닥한 적이 많았지만 결국 나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준 순간이 찾아왔을 때는 꽤나 기뻤다.


드디어 마지막 모듈, MBA 교육의 화룡정점이라 불리는 글로벌 비즈니스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L사의 해외법인이 있는 3개국을 순회하며 각 사업장의 비즈니스 이슈를 해결하는 활동이다. 프랑스, 네덜란드에 이어 마지막으로 방문한 국가는 카자흐스탄 알마티다. 도시의 기본 고도가 500~800미터고 도시를 둘러싼 천산은 무려 4,000미터가 넘는다. 아래의 사진에서 잘 보인다.


교육 다 끝났다고 이땐 그저 좋았지 뭐


정규 교육이 모두 끝나고 리조트에서 마지막 식사를 마친 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덩치 큰 몇몇 남성들이 나를 둘러싸고 순식간에 번쩍 들었다. 순간 ‘아 큰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하던 테이블 옆에 큰 수영장에 물이 가득 차 있던 게 떠올랐다. 비극적 결말을 확신한 나는 다급히 “휴대폰 휴대폰!”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친절한(?) 우리 참가자들은 그간 쌓은 미운 정 고운 정 때문인지 휴대폰과 지갑을 주머니에서 빼고 신발까지 벗겨 주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수영장으로 나를 던졌다. 아래의 사진을 다시 보자, 무려 장정 4명이 나의 두 팔과 두 다리를 각각 잡고 힘껏 던진 것이다.


참 시원하게도 던졌다 정말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1년 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수료식을 맞이하는 참가자들이 내게 준 별명은 'FM', '젊은 늙은이', '조순사', '찬틀러', '조슈타포' 등이었다. "팀에 저런 팀원 있으면 만사 편하겠다."라는 말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아래는 그때 그분들이 만들어준 롤링페이퍼다.


칭찬인지 욕인지 알기 어렵다.


이 MBA 교육이 끝난 후 만든 좌우명과 같은 문구가 바로 [소신 있고 당당하게, 때론 유연하게]이다. 이 문구처럼 2015년 후로는 생각과 행동에 여유를 가지고 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덜 받을 뿐만 아니라 개인 삶도 챙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소신을 굽히거나 열정이 식은 것도 아니었다. 교육 참가자와의 신뢰는 여전히 돈독히 쌓을 수 있었고 개인 일상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에 행복을 느끼면서도 업무의 효율은 더 향상됐다.


그때 왜 그리도 치열하게 살았나 자문해보면, 그냥 '그럴만했다.' 정도로 대답할 수 있겠다. 직장인인 사람은 언제고 미친 듯이 일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때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본인보다 한참 어린 교육 담당자가 숨쉴틈 없게 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때론 거칠게 몰아붙였어도 너그럽게 이해하고 함께 해주신 그때 그분들이 문득문득 그립다. 몇몇 분은 임원이 되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때 참 재미있었지? 라며 어깨를 툭툭 쳐주시는 덕에 나는 L사 인재개발원의 교육담당자, 그것도 FM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여전히 자랑스럽다.



FM 교육담당자의 풋풋했던 신입사원 지도선배 시절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chanrran/25


작가의 짧은 글이 궁금하다면

https://twitter.com/chanrran


매거진의 이전글 청중 앞에서 진땀 나는 당신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