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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Sep 23. 2020

인기 검색어

그리고 숨어있는 책임

나에게는 어떤 습관이 있다. 아니 생겼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누군가의 이름이 인기 검색어로 올라오면 '자살'을 떠올리는 버릇이다. 만약 당사자가 나의 이런 생각을 알게 되면 그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습관을 떨쳐내어 버릴 수 없게 되었다. 

  

이 습관의 시작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던 어느 날이다. 그녀는 여배우였다. 그리 유명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명의 설움을 느낄 만큼 알려지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흔히 연기 잘하는 배우가 그렇듯, 좋은 작품 두세 개, 그저 그런 작품 두세 개, CF 두세 개. 이렇게 손가락을 몇 개 꼽지 않고도 설명이 되는 소박한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유명하지도, 그렇지 않지도 않은 것처럼 나는 그녀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이 발표되던 날 나는 종일 우울했다. 


그녀는 자살이었다. 

  

그 이후로도 인기 검색어에 떠오른 몇몇은 실제로 나의 예상처럼 자살을 했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런 형태의 자살 중 대부분은 온라인 상의 검증되지 않은 루머들과 욕설, 비방들 때문이었다. 죽음을 애도하던 몇몇은 그 죽음을 함께 했고, 몇몇은 그 죽음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죽음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던 몇몇은 구속되거나, 그렇지 않거나, 혹은 구속되는가 싶다가 아니거나 했다. 몇몇은 죄의식 조차 느끼지 않았으며 몇몇은 당사자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나는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두둔하는 글을 올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치 그 누군가의 자살을 바라는 것처럼, 검색어에 오른 인물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왠지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 습관이 지속되던 어느 날, 기묘한 일이 생겼다. 인기 검색어에 내 이름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의아한 마음으로 이름을 클릭해보았지만 나와 이름이 같은, 눈이 먼 시인의 과거 인터뷰 기사가 한 두 개 보일 뿐이었다. 순위는 빠른 시간 내 한 단계씩 상승하여 인기 검색어 1위에 오르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그때 내 이름 아래 새로운 검색어가 나타났다. 

  

"XXX 자살"

  

나는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허리께가 서늘하고 심장이 털썩,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죽고 싶어 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야가 검게 물들고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곧 다시 정신을 잃게 될 것이고 이번에는 두 번 다시 눈을 뜰 수 없을 거라는 불안한 확신이 들었다. 힘겹게 떠진 눈 앞에는 진득한 피가 고여 서서히 흘러내리는 키보드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컴퓨터 앞에서 쓰러져 버린 모양이었다. 왼쪽 손은 힘없이 처져 있었고 약지를 간질이며 한 방울씩 맺힌 피는 바닥에 붉은 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무엇인가 쥐고 있었지만 고개를 들어 확인할 수가 없었다. 다만 익숙한 감촉으로 그것이 책상 위에 놓여있던 커터칼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내 팔목을 그어버린 모양이다.

  

벌을 받은 것인가? 왜? 나는 감겨오는 눈을 다시금 힘겹게 부릅뜨며 되뇌었다.

  

할 말을 잃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예상한 것. 아니, 사실 그렇게 되었으면 한 것.

나는 이렇게 살아있지만 누군가는 생을 못 이겨 자살해버리기를 바란것.

  

대가는 충분하다. 나는 죽어 마땅하다.




image source: https://unsplash.com/photos/fGvXxVxmTi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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