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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Aug 09. 2022

그는 죽는 순간 귀뚜라미를 걱정했다

귀뚤귀뚤

그는 2022년 8월 9일에 죽었다.


그는 그가 죽은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가 죽기 전날인 8월 8일은 세계 고양이의 날이었고(그는 고양이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80년 만에 쏟아진 폭우로 서울은 물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는 우연히 그다음 날 죽었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고 기억하기 쉬운 날짜를 택한 꼴이 되었다. 아무래도 8월 17일이라든지 9월 23일이라든지 하는 날짜들은 왠지 모르게 좀 어색하다.


그가 죽기 전전날인 8월 7일은 입추였다. 


절기는 늘 그렇듯 바람의 색깔을 바꾸어 놓았다. 해가 질 무렵엔 산책을 해도 코 끝에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히지 않게 되었다. 8월 9일에 죽은 그는 날씨로는 여름에 죽었지만 절기로는 가을의 초입에 죽은 것이기도 하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가 죽음을 결심한 것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죽기에 좋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8월 9일 낮 12시 반, 그가 죽기 1시간 전에는 전날부터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던 비가 거짓말처럼 멈춰있었다. 아침부터 틀어놓은 에어컨 덕분에 집안의 온습도가 미묘한 조화를 이루며 솔솔 낮잠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른 점심식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봤다. 침대에 펼쳐놓은 포근한 이불이 등에서부터 그를 감싸 안았다.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완벽한 공간과 시간에 들어섰을 때, 그는 죽음을 결심했다.


그는 침대에서 조용히 일어나 위스키와 신경안정제를 들고 탁자에 앉았다. 그리고 위스키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장 그르니에의 [일상적인 삶] 중, 여행에 다룬 챕터였다. - 그 끝없는 환멸과 식을 줄 모르는 권태에도 불구하고 삶이라는 여행은 - 이 문장을 마지막으로 그는 책을 덮고 위스키의 마개를 닫았다. 문단에 글이 조금 더 남아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오랫동안 모아 왔던 신경안정제는 그가 깨어나지 않는 잠에 빠져들 수 있게 만드는데 충분한 양이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반잔의 위스키로 약을 넘겼다. 약이 몇 개인지 굳이 세지도 않다. 그냥 충분하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침대로 누웠다. 1시간이 흘러 오후 1시 30분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온습도의 조화는 완벽했다.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위스키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알코올은 신경안정제와 함께 그의 눈꺼풀을 무겁게 눌렀다. 그리고 그는 조금씩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죽기 직전 그가 떠올린 것은 귀뚜라미였다.


어제, 그러니까 8월 8일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아파트 초입에서 거친 빗소리를 뚫고 난데없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 소리가 얼마나 또렷했는지 귀뚜라미가 아니라고는 추호도 의심할 수 없었다. 그는 쯧쯧하고 혀를 찼다. 아무리 절기라는 게 신기하게 들어맞고 하루 전에 입추가 지났다지만 이 폭우 속에서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를 들으니 걱정이 된 것이다. 귀뚜라미 소리는 선선하고 고요한 초가을 저녁, 그리고 구름 없는 밤하늘의 고요한 달과 어울리는 것이지 이 여름 끝의 기록적인 폭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귀뚜라미를 보호해줄 방법 따윈 없었다. 귀뚜라미는 늘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고 소리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절기에 충실했던 귀뚜라미는 울기 시작했고, 폭우는 쏟아졌고, 귀뚜라미는 제대로 울어보지도 못한 채 물살에 쓸려내려가거나 무너진 흙더미에 묻혀 죽을 것이다. 아마도 그가 들었던 귀뚜라미 소리는 그 귀뚜라미의 죽기 전 마지막 울음소리일 것이다.


그는 꿈꾸듯 멀어져 가는 현실감각 속에서 귀뚜라미를 걱정했다. 그가 이렇게 갑자기 죽어버리면 복잡하게 꼬일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귀뚜라미 걱정뿐이었다. 귀뚜라미 외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하루 뒤,



그가 깨어났다. 깨어났을 때 낯선 하얀 천장을 보자마자 그는 병원임을 직감했다. 신경안정제가 부족했는지 알코올이 부족했는지, 혹은 그 둘의 상호작용이 부족해서 그의 중추신경을 마비시키기에 조금 모자랐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찌 되었든 그는 살아났다.


그가 눈을 뜨자 옆에 있던 마침 옆에서 차트를 뒤적이던 간호사가 말을 걸었다.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그리고 그가 답했다. “… 귀뚜라미”



2022년 8월 7일은 입추였다. 8월 8일은 세계 고양이의 날이었고 서울에는 80년 만에 폭우가 내려 물난리가 났다. 8월 9일, 완벽한 시간과 공간에서 그는 죽었지만 8월 10일, 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났다. 귀뚜라미 때문일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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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https://unsplash.com/photos/TFth26tEj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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