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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Nov 05. 2021

당신의 마음 속에 이직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돋아나는 그것

"아 이것 참 곤란하네..."


나는 혼잣말을 하며 거울에 정수리 부근을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머리 위쪽을 거울로 보자니 고개를 숙이고 턱을 한껏 당기며 눈을 치켜뜰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이렇게 기괴한 포즈와 표정으로 거울을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머리에 뿔이 돋아났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날 무렵, 꿈에서 팀장님은 내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듣는 척만 하며 귀를 기울이지 않자 팀장님은 내 머리에 꿍하고 꿀밤을 먹였다. 아니 이 인간이 정말? 하며 어이없어하는 순간, 갑자기 정수리 부근이 가려워졌다. 어떤 느낌이냐면 모기에 물린 자리를 손으로 세게 긁어 가려움과 아픔이 8 대 2 정도로 조합된 것과 비슷했다. 나는 현실처럼 생생하게 가렵고 아픈 꿀밤 자리를 벅벅 긁다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손에 딱딱한 무엇인가 느껴졌던 것이다. 급히 화장실로 달려와 불을 켜고 거울을 들여다보자 가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하얀색 뿔이 돋아나 있는 것이 보였다.


지름과 높이 모두 약 1.5cm의 완벽한 원뿔 모양을 하고 있는 새하얀 이것이 이직뿔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직을 꿈꾸는 자에게 여지없이 돋아나는 이 뿔은 2021년 11월에 국내에서 첫 사례가 보고 된 증상이다.


처음 이직뿔이 난 것으로 알려진 김모씨(35세)는 회사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어느 날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가 이직을 결심하자마자 바로 뿔이 돋아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마음속 이직 의지가 이직뿔이라는 형태로 발현된 것은 헤드헌터의 제안으로 지원한 회사의 1차 면접에 합격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의 뿔 사진이 뉴스에 실렸을 때 사람들은 또 어떤 관종이 부모님이 주신 귀중한 몸에 장난을 쳤구나 하며 혀를 찼다. 그러나 X-Ray 사진으로 이직뿔이 두개골에서 자라난 신체 기관 중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모두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2021년부터 도래한 이른바 '대 이직의 시대'에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던 것이다. 모두가 이직을 꿈꾸고 있는 '대 이직의 시대'에 공채 출신으로서 한 회사에만 남아있는 것은 되려 소극적이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 현시점인 2023년 5월 기준으로 비공식 집계된 이직뿔 발생자는 전체 직장인의 20%에 이른다는 통계 조사 결과도 발표되었다.


이직뿔의 특징 중 하나는 이것이 머리 가마에서 돋아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쌍가마의 경우 뿔이 두 개 돋아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나는 외가마로 태어남을 감사히 여기며 오늘이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이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다. 안도하기는 이르다. 나는 빠른 손놀림으로 인터넷에서 이직뿔 전문 병원을 검색했다. 역시 강남역 인근에 많은 병원이 몰려있었다. 후기가 가장 많은 이직뿔 전문병원에 예약을 했다.


이 병원은 당일 수술도 가능했다. 다행히 토요일 마지막 진료 시간이 오후 6시 30분이었다. 얼마나 병원이 잘 운영되기에 주말에도 오후 늦은 까지 진료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어쨌든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서둘러야 했다. 이직뿔로 인해 이직의 의도를 누구나 알 수 있게 된 2023년 1월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건의에 따라 근로기준법이 변경되었다. 근로자의 이직뿔이 3cm 이상 자라난 경우, 사용자는 근로자의 동의 없이 해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 이것 참 곤란하네 정말..."


나는 병원 엘리베이터에 타서 거울을 보며 다시 혼잣말을 했다. 제멋대로인 두상 탓에 어울리지도 않는 캡모자를 쓴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게다가 아주 자세히 살펴보면 캡모자의 윗부분이 툭 튀어나와 있어 이직뿔 때문에 캡모자를 썼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병원이 자리 잡은 건물 5층에 엘리베이터가 선 뒤 문이 열리자 투명한 원통 기둥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아름드리 느티나무만큼 굵었고 높이는 천장까지 닿아 있었다. 투명한 유리통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이직 뿔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직뿔 제거 전문 병원’, ‘1만 건 이상의 수술 경력’, ‘성공률 99.9%’라는 문구가 음각으로 새겨진 황동 현판이 걸려 있었다.


아니 그렇담 1,000명 중 1명은 죽는 거고 1만 건을 했으면 10명이나 죽었다는 건가? 갑자기 양팔에 소름이 오소소 하고 돋았다. 이 이직뿔이 심각한 증세인 이유는 제거 수술을 하다가 실패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불법 시술을 하다가 죽는 사람도 심심찮게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직뿔은 두개골에 연결되어 돋아난 뼈이기에 그랬다.


사실 이직뿔을 없애는 법은 간단했다. 이직에 성공하는 것이다. 크기가 얼마나 크든 이직에 성공하면 이직뿔은 거짓말처럼 '톡'하고 떨어졌다.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로 제거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목숨이 위험하기도 하고, 이직뿔을 제거한 자리에 생긴 맨살로부터 원형탈모가 발생하기도 했다. 수술의 난이도가 꽤 높았고 비용도 매우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박혜진 님, 1번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특유의 무미건조한 말투로 간호사가 나의 이름을 언급했다. 나는 죄인이라도 된 듯 어깨를 움츠리며 진료실 문을 열었다.


"네? 천만 원이요?"


의사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던진 수술비용에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나는 돈도 없거니와, 살갑지 않은 의사의 태도에 기분이 나빠져 고민해보고 오겠다는 말을 던지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병원에서 나온 나는 정처 없이 걸었다. 생각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계속 되뇌며 휴대폰으로 이직뿔을 검색했다. 그러다가 '이직뿔을 이겨낸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찾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회원 가입을 하기는 꺼려져서 비회원에게 노출된 글의 제목만 몇 개 훑어보았다. 그러다 내 눈을 사로잡은 한 문장이 있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이직뿔이 작아집니다.'


정말일까? 일말의 희망이 빛이 보이는 듯했다. 정처 없는 걸음과 정신을 다잡고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양재역이었다. 나는 자주 가는 7번 출구 인근의 작은 커피숍으로 갔다. 커피숍에 모인 사람들이 껄껄 대며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도 이직뿔이라는 단어가 몇 번씩 오가는 것이 들렸다.


일요일 아침
나는 아침부터 거실에 요가매트를 펴고 명상을 시작했다. 그래, 고양이야 고양이. 내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완벽하고도 사랑스러운 그 존재를 떠올리며 가부좌를 튼 다리를 이리저리 씰룩대며 자세를 고쳤다.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피운 아로마 향이 코 아래에 은은하게 퍼지며 기분이 편안해졌다.


그러기를 몇 시간, 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다시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이럴 수가, 분명 이직뿔은 약간이긴 하지만 조금 작아져 있었다. 뛸 듯이 기뻤다. 이대로 조금만 하면 돼. 그래, 월요일만 잘 버티면 될 거야. 나는 희망에 차서 이직뿔을 잠시나마 가릴 수 있는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을 고민하며 잠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번 헤어(Bun hair), 프시케 노트(psyche knot), 한국에서는 흔히 똥머리라고 불리는 헤어스타일을 선택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오후 2시
굳센 다짐으로 출근한 회사 이건만 팀장님의 밑도 끝도 없는 잔소리에 내 멘탈은 또다시 바사삭하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큰일이었다. 뿔이 조금씩 다시 자라는 소리가 두개골을 울리기 시작했다.


끼이-끼긱끽


"혜진 씨, 나 좀 따로 보자."


아 안돼. 팀장님은 여느 때 보다 강도 높게 흔들리는 내 동공과 마음을 눈치챘는지 급기야 면담을 하자고 했다. 나는 똥머리가 제대로 자리 잡았는지 불안해서 연신 손을 머리에 올리며 팀장님의 뒤를 죄수처럼 따라갔다.



둘 뿐인 회의실의 문이 닫혔다. 팀장님이 입을 열기 시작했고 나는 귀를 닫았다. 저 잔소리를 더 듣다가는 오늘 퇴근 전에 이직뿔이 똥머리를 뚫고 나올 것이다. 그러던 중, 팀장님이 정신 사납게 휘휘 놀리던 볼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와 팀장님은 본능적으로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꿍!
팀장님과 나는 동시에 머리를 숙이다가 서로의 이마를 받았다. 나는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팀장님은 안돼!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든 내 눈앞에 도저히 믿지 못할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분신처럼 늘 하고 다니던 검은색 프라다 머리띠가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이마 아래로 흘러내려 X맨의 사이클롭스처럼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었고, 머리띠가 가려주지 못해 훤히 드러난 정수리 부근에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분명 이직뿔이었다.


"어 혜진 씨... 이건 그게 아니라... 흐읍"


그녀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푸핫, 하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웃음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가슴께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던 무엇인가 스스륵 하고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나만 그럴 리 없지.'


그녀가 상무님에게 시도 때도 없이 탈탈 털리는 모습을 사실 나는 자주 목격했었다. 단지 목격했다는 사실을 기억에서 지우고 동정을 외면했을 뿐이다. 당황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한껏  인자한 미소를 띠고 고개를 들었다. 괜찮으세요? 웃어서 죄송해요 라고 차분히 말하는 나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는 무언의 언어로 나의 함구를 요구했다. 나는 짐짓 모른 척 그녀의 이직뿔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회의실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눈길을 돌렸다. 사무실 건물이 2층이었기에 거리의 보도와 차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창문 밖에는 이직뿔이 해고의 사유로서 정당하지 않다는 현수막을 든 시위대의 행렬이 보였다. 그들은 당당하게 이직뿔을 드러내고 시위 행렬에 참여하고 있었고, 아주아주 큰 뿔도 드문 드문 눈에 띄었다.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팀장님의 손을 잡고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켜 세워줬다. 그리고 진정 온화한 마음으로 말을 건넸다. 그동안 많이 힘드셨지요?라고.





*영감을 준 노래: 패닉 3집- 뿔

아침에 일어나 머리가 간지러워서 뒤통수 근처를 만져보니 뿔이 하나 돋아났네
근심찬 얼굴로 주위에 알리려다가 이상한 눈으로 놀려댈걸 뻔히 알고 관뒀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도 뿔은 자라나 어느새 벌써 엄지손가락 닮을 만큼 굵어졌네

(어느새 너무나 굵어 내 맘을 너무도 긁어 오 너무나 빨리 늙어)

손톱이 길듯 수염이 길듯 영영 자랄까 불안한 맘에 잠을 못자니 머리마저 빠져가네

(너무도 늦어진 밤에 너무나 불안한 밤에 잠도 안와 앞이 까매)

이쯤은 뭐 어때 모자를 쓰면 되지 뭐 직장의 동료들 한 마디씩
"거 모자 한번 어울리네"

어쩐지 요즘엔 사는게 짜릿짜릿해 나만이 간직한 비밀이란 이렇게나 즐거워
나의 예쁜 뿔



image source : https://unsplash.com/photos/UxcRjTtzLX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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