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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Aug 07. 2022

음식물이 쓰레기로 변하는 일에 대하여

오, 위대한 시간이여

주말에 회사(때가 되면 어련히 밥을 주는 장소)를 떠나 집에 머물러 있으면 무언가 먹을 게 있나 없나 하고 시선이 여기저기를 향하게 된다. 그래서 평소엔 잘 들여다보지 않는 냉장고 구석구석을 살핀다. 그러다 보면 이상한 모양으로 변해있거나 이상한 냄새가 나는, 말하자면 ‘버릴 음식물’을 발견하게 된다.


이 음식물은 이름 뒤에 ‘쓰레기'라는 단어가 붙어 ‘음식물 쓰레기’가 된다.


이것은 참 묘한 일이다. 아무리 값어치가 나가는 음식물일지라도 아무리 좋은 냉장고와 냉동실에 보관할지라도 시간은 음식물을 처참하게 만든다. 심지어 시간이라는 놈은 손도 안 대고 음식물의 모양과 색깔과 냄새마저 바꾼다. 무서운 시간 놈. 시간에 의해 바뀐 음식물은 먹지 못할 뿐 아니라 유독한 물질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몇 개 있는데 특히 귤이 썩게 되면 진물이 나올 뿐 아니라 곰팡이의 먼지가 폴폴 날리며… 아니다, 생략하도록 하자. 우리 모두 쯤 이러한 기억 몇 개씩은 가지고 있으니 굳이 상기시킬 필요 없겠다.


여하튼 이 음식물 중에는 직접 산 것도 있고 누군가에게 받은 것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의미를 잃었다. 일상의 날에 사거나 받은 것도, 특별한 날의 선물이었던 것들도 이제는 모두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사람의 망각과 시간이 저지른 합작품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음식물을 사거나 주고받을 때, 그 음식물이 실제로 제공할 영양소보다는 그냥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아닐까? 의문을 가져 본다. 왜 사람들은 딱 맞게, 혹은 약간은 부족하게 무엇인가를 구입하거나 저장할 수 없는 걸까? 음식물은 사거나 받는 그 시점에 가득했던 의욕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혹시 냉장고라는 저 기묘하고 교묘한 공간(음식물을 영원토록 그 상태 그대로 유지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에 들어가기만 하면 먹을 의욕이라는 것은 상실되어버리고 마는 걸까? 


나는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흐물흐물해진 애호박과 곰팡이 핀 오메기 떡과 말랑 말랑해진 양파와 배추의 모양은 간신히 유지하고 있으나 아무리 잘 봐줘도 묵은지로도 인정받기 힘든 김치와 같은 ‘음식물’들을 모아서 아파트 앞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으로 나간다.


음식물 쓰레기 통 전용 키를 가져다 대면 삑, 하고 음식물 쓰레기 통이 열린다. 이미 여러 가정에서 버린 쓰레기들 때문에 악취와 날파리가 가득하다. 후드득, 하고 음식물을 쏟아부으면 내가 얼마 큼의 양을 버렸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디지털 화면에 나온 빨간 숫자는 1,200이다. 내가 방금 버린 1.2kg의 음식물 쓰레기는 발효나 매립 처리를 위에 또 돈이 들어가겠지. 그리고 이 숫자만큼의 이번 달 아파트 관리비가 추가되겠지.


생각할수록 묘한 일이다. 음식물(과일이나 채소, 고기나 가공식품) 만들고 키우는데 돈이 들고, 유통되는데 돈이 들고, 사거나 선물하는데 포장과 부가세가 들고, 보관하는데 돈이 들고, (결국 먹지 못해)버리는데 돈이 들고, 처리하는데 돈이 든다. 조금  효율적이거나 비효율적일 , 음식물을 사고 버리는 일은 모든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필연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세상에 많은 사람은 여전히 충분하지 못한 음식과 영양에 굶고 있다.


대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얼마나 뒤죽박죽인 걸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초파리가 나를 따라온다. 내 손에 든 음식 통의 냄새를 맡았나 보다. 나는 손사래 치며 놈을 쫓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다. 입추라던데, 날은 여전히 덥고 한 번 느껴지기 시작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는 쉬이 가시질 않는다.


아, 그러고 보니 시간이라는 놈은 아주 공평하다. 시간은 나라는 유기물 역시도 아주 착실하고 성실하게 쓰레기로 만들어 가고 있다. 생명이라는 것으로 장기와 혈액이 열심히 활동해주고 있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결국 우리는 모두 쓰레기가 될 것이다.


오 위대한 시간이여. 잔인한 그대여.



작가의 짧은 글이 궁금하다면

https://twitter.com/chanrran




image source: https://unsplash.com/photos/Yn0l7uwBr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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