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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Sep 01. 2022

19세 미만 판매금지

술 먹은 김에 괜한 시비를 걸어보자

2022년 9월 1일 21시 31분 07초에 집 앞 편의점에서 하나카드로 구입한 에딩거 바이스 비어 캔맥주는 4캔에 11,000원이다.(원래 10,000원이던 가격이 언제부터 올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봉투 드릴까요?"라고 매번 물어보는 편의점주와 매번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는 나 사이에는 모종의 답답함이 있다. 3년을 넘게 다니고 있는 집 앞 편의점주는 나를 좀 기억해주기 바란다. 난 물건을 사면 손에 들든지 가방에 넣고 가는 사람이다. 들고 가다가 바닥에 데굴데굴 떨어뜨릴 지언 정 절대로 봉투는 사지 않는다. 30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필요가 없어서다. 그러니 제발 봉투 필요하냐고 물어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편의점주도 답답할 수 있다. 이 놈은 그렇게 물어봐도 봉투 한 번을 안 사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으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여하튼,

나는 맥주 4캔을 차곡차곡 냉장고에 넣어놓고 기분 좋은 샤워를 한다. 집에 오는 길에 잠깐 들여다본 프로야구는 내가 10년째 응원하는 팀이 9회 초에 역전을 했고 결국 승리를 거뒀다.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도 패전 투수가 될 뻔하던 투수의 포효를 떠올리며 건성건성 머리를 말린다.


몸의 물기를 대충 닦고 첫 번째 캔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아직 덜 시원하지만 상관없다. 첫 번째 캔을 마시는 동안 나머지 세 캔은 더 차가워질 거고 두 번째 캔을 마시는 동안 나머지 두 개의 캔은 더 차가워질 거다. 밤은 아직 길다. 안주로는 어제 회사에서 픽업한 과일 샐러드를 꺼냈다. 그리고 2006년에 나온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을 다시 재생한다. 이 영화가 벌써 그렇게 오래됐던가? 여하튼 넷플릭스는 기특하게도 내가 아이폰에서 보다가 중단했던 시점부터 아이패드에서 재생해준다.


나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데리고 탈출하는 장면을 보며 첫 번째 에딩거 바이스 비어 캔맥주를 마시고 과일 샐러드에 들어있는 자두 한 조각을 입에 우물우물하다가 무심코 맥주 캔을 돌려 한국어로 쓰여있는 경고 문구를 보게 되었다.


19세 미만 판매 금지

오호라? 나는 괜히 시비를 걸고 싶어졌다.


너 오늘 잘 걸렸다 싶다. '19세 미만 판매 금지'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 19세 미만이 판매를 하면 안 된다는 건지, 19세 미만에게 판매를 하면 안 된다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누가 누구에게 판매를 하면 안 된다는 건지 명확하게 표기도 안 한 이 성의 없는 경고 문구는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들어서 멀쩡히 보던 영화를 중지하고 3일 전에 산 맥북 프로를 열게 만들었다. 브런치에 글 쓸거리가 생겼구나, 반드시 필요한 이유 없이 구입한 맥북 프로가 드디어 그 효용을 발휘하게 되었구나 하면서.


그런데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한국어를 성의 없이 대충대충 써서 의미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화가 치민다. 어느 정도냐 하면 식당에서 나보다 늦게 주문한 사람의 메뉴가 내 음식보다 일찍 나왔고, 정상적으로 들어간 줄 알았던 내 주문은 포스기에 입력도 안되었으며, 점원은 마치 내 잘못인 양 '곧 음식 나올 거예요.' 하고 성의 없는 대답을 하는 상황에서 유발되는 분노의 수준이다.(실제 오늘 일어난 일)


음, 좀 다른 차원으로 조금 더 시비를 걸어 볼까? 19세 미만 판매 금지라니, 그럼 구입하거나 마시는 건 괜찮은가? 만약 편의점주가 19세 미만에게 판매를 하면 점주는 처벌받고 구입한 19세 미만인 미성년자는 무죄인 건가? 이 모호한 문구가 목적하는 바에 나는 1%도 동의할 수 없다. 점주는 무슨 죄야 대체. 이러니까 자꾸만 미성년자들이 신분증을 도용해서 술을 사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큰일이다. 정부까지 나왔다. 오늘은 한 캔만 마셔야 하나...) 정말로 19세 미만이 '술을 먹지 않길' 바란다면, 맥주의 경고 문구는 이렇게 쓰여있어야 한다.


19세 미만 음주 금지

그러나 정부는 교묘히 본인의 책임을 피하고 애꿎은 판매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먹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못됐네 정말. 아, 그런데 경고 문구에 쓰여 있는 '19세 미만 판매 금지'라는 말을 보고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만약 궁금해했던 사람이 있다면 댓글을 달아주면 좋겠다. 모종의 동질감 내지는 동료의식을 느끼고 싶어서이다. 야근을 마치고 귀가한 목요일 밤 10시경에 이따위 글을 쓰며 맥주 캔에 적힌 경고 문구에 시비를 걸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 하나면 좀 외로울 것 같다.


오늘도 내 글은 별다른 목적 없이 시작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끝맺는다. 이제 글을 끝맺어야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켤 수 있다.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쓰면 내 소중한 맥북에 맥주가 쏟아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만 한다.


아직 맥주는  캔이나 남았고 칠드런 오브 맨은 1시간 정도의 러닝 타임이 남았다. 그리고 2022 9월의 첫날밤은 1시간 27분이나 남아있다. 나는 왠지 모를 넉넉함(  남은 맥주,  덜찌는 과일 샐러드 안주,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9 첫날밤) 안도감을 느끼며 후회 없이 마침표를 찍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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