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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Aug 16. 2022

갑자기 쏟아지는 건 비가 아니라 눈물

2022년 8월 16일(화)의 일기

아침에 늦잠을 잘 것 같아 저녁 약을 먹지 않았다. 때때로 너무 늦은 시간에 저녁 약을 먹으면 아침에 무덤에서 깨어나는 기분이다. 눈을 떴는데 관 뚜껑이 눈앞에 있는 기분. 죽었는지 살았는지 분간이 안 되는 기분.


엊저녁은 결국 새벽 4시까지 뒤척이다가 메마른 꿈을 꾸었다. 메마른 꿈은 축축한 꿈과 다른 형태로 잔향을 남긴다. 축축한 꿈이 젖은 의자에 실수로 앉았다가 일어난 듯한 기분이라면 메마른 꿈은 뽀얀 먼지가 쌓인 소파에 털썩 앉는 기분이다.(난 먼지를 싫어한다.) 눈높이에서 풀풀 날리는 먼지. 먼지를 마시지 않으려 나도 모르게 헛 하고 멈추는 숨. 그리고 조금씩 내려앉는 먼지.


메마른 꿈은 건조하고 덤덤한 기분의 무채색 감정을 남긴다. 나는 내가 아닌  같은  3자의 눈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런 메마른 꿈을  오늘 같은 날이면 표정 없이 일어나 표정 없는 옷을 입고 표정 없는 걸음을 걷는다. 다행히 메마른 일상을 살며 건조하게 털려 나간다. 툭툭 털면 털리는 가벼운 먼지처럼. 그래 먼지처럼.


반면 축축한 꿈은 진한 감정을 다채롭게 남긴다. 여러 가지 색의 페인트를 넣은 스테인리스 통을 막대로 휘휘 젓다가 하나의 색으로 합쳐지기 직전, 원래의 색을 유지한 페인트들이 원형의 곡선을 그리다 멈춰서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렇게 모든 감정선이, 줄기가 남아버린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축축한 꿈의 잔향은 오랜 시간 동안 몸에 붙어 있다. 젖은 진흙은 마를 때까지 털어낼 수 없다. 그와 비슷한 것이 축축한 꿈이 남기는 감정이다.


다행히 오늘은 메마른 꿈을 꾸었고 비 소식도 없다. 하지만 하늘은 어딘지 모르게 축축해 보인다. 오늘 갑자기 쏟아지는 건 비가 아니라 눈물일 수도 있다.




image source: https://unsplash.com/photos/kKitdwMT2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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