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기의 교육 - ① 아이들의 자유로움
아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신체 능력이 향상되고 체력이 좋아지면 아동기의 교육이 시작된다. 루소는 아동기가 되면 아이가 스스로를 표현하고, 스스로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루소는 아이가 울어도 가까이 가지 않을 것이고, 대신에 자기를 부르거나 찾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가 스스로 몸을 움직이다가 다쳤을 때도 같은 맥락의 해결책을 보인다.
“아이는 틀림없이 내가 그 상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판단을 내릴 것이다. 내가 걱정하며 뛰어가서 달래거나 하면, 아이는 ‘정말 큰일 났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냉정하게 있으면 그도 냉정을 되찾아, 아픔이 가라앉으면 ‘이제 다 나았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아동기에 접어들어 생기는 이런 변화는 이제 본격적으로 아이들의 학습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그 중 첫번째가 부모의 과잉보호이다. 루소는 더 나아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에밀이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오히려 그가 한번도 다치지 않아 고통을 모르고 자라는 것을 더 곤란한 일로 생각할 것이다. 괴로워하는 것, 이것은 그가 무엇보다도 먼저 배워야 할 것이며, 이것을 아는 일이야말로 장래에 가장 필요한 일이다.”
루소는 여기서 에밀의 육체적인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나는 학습을 하면서 겪게 되는 정서적인 상처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배우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못하던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해가 어설프고, 적용하는 것이 서투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silver”와 “seven”을 헷갈려서 읽을 수도 있다. 알던 “n”의 음가도 실수하고, 모르던 “ㅣ”의 음가를 알게 되면서 비로소 “silver”를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아이가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 때문에 설명을 듣는 것에만 의존하게 되면 과감하게 추론하는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학습자의 추론은 학습에서 매우 절대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I like to go home.”이라는 문장에서 ‘난 집에 가고 싶어.’라는 의미라고 사실을 확인하는 소극적 추론에서부터, ‘왜 이 문장에서는 to the house라고 쓰지 않지? 혹시 다른 의미를 가지나?’와 같은 적극적인 추론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근거를 갖고 과감하게 추론하는지가 학습자의 성취도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추론을 하면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학습자의 성향에 따라서 논리적일 수도 있고 직관적일 수도 있지만, 추론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분명히 바람직한 학습태도는 아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인지교육을 시작할 때를 대비해서, 아동기에는 아이가 적극적으로 추론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는 것이 좋다. 나름의 근거를 들어서 인과관계를 설명하거나, 자기가 관찰한 이야기들을 다소 엉뚱한 논리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들은 아이가 적극적으로 추론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은 이때 아이들의 엉뚱한 이야기들을 수정해주려 노력하기 보다는 같이 고민하고, 아이의 노력에 흥미와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현명하다.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탐험의 기회를 주는 대신, 가르치기만 하려면 하는 교육자들에게 루소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이번 에피소드를 마치자.
“당신들은 나에게 말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나쁜 성향을 교정하는 시기이다. 고통을 적게 느끼는 어린 시절에 고통을 많이 주어, 이성의 시기에 고통을 덜 느끼게 할 필요가 있다.”라고. 그러나 그런 일이 모두 당신 뜻대로 된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또 아이의 약한 정신을 괴롭히는 당신들의 그 훌륭한 교육이 아이에게 유익하기는커녕 해로운 것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당신들이 멋대로 아이에게 주는 고통에 의해, 아이가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