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거리를 걷거나 공원에 가보면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불독부터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품종까지, 그 다양성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결혼하기 전 혼자 살 때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었다.
하루하루 살기도 바쁘고 여유가 없는데 어떤 동물을 데리고 와서 집에서 키운다?
전혀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든 영국에서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다른 한편으로 어떤 마음으로 키울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외로움'때문에 키우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는 썰렁한 집에 발을 들여놓기보다
사람이 되었든 동물이 되었든 누군가가 나를 맞이해 주는 것은 반가운 일일 것이다.
아니면 그냥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무엇을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키우는 것(소유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은 가까이 두려는 마음으로 연결되기 쉬우니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동물을 키우려는 마음이 강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양육의 힘듬에 매일매일 새삼스레 놀란다.
더군다나 아이는 자라면서 요구가 강해지고 움직임이 커진다.
아이를 키우는 게 기쁨을 주는 측면이 분명 있지만 앞서 밝힌 대로
혼자 살았다면 결코 누군가를(동물을) 키우려는 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반려동물을 키우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그 '선택'에 존경심마저 든다.
예전에 미군들과 군생활을 했을 때의 일이다.
미군부대는 일반 회사처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근무하고 토, 일은 쉬는 체제여서
당시 금요일은 지금의 '불금' 같았다.
미군들은 금요일만 되면 버드와이저를 몇십 병씩 사 와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미친 듯이 놀았다.
평소 스트레스가 그렇게 많았나? 의심이 들 정도로 노는 모습을 보며 당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었다.
'아마 주위에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어서 마땅히 에너지를 쏟을 데가 없나 봐'
무심코 했던 말 같은데 '에너지를 쏟을 데가 없다'는 말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다.
'에크하르트 톨레'라는 영성가는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생각이
불행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생각의 과잉, 과도한 정신 활동이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쩌면 '고인 물이 썩는다'는 속담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우리 몸을 하나의 그릇으로 본다면 에너지가 나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흘러 나가야 하는데
계속 포커스가 나에게만 맞추어지면 이게 에너지 과잉, 생각 과잉, 고인 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측면이 있는 게 아닐까?
목욕도 해줘야 하고, 빗질도 해줘야 하고, 잘 곳도 마련해 줘야 하고, 병원도 데리고 가줘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많다.
나의 시간과 돈,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럼에도, 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선택하면 그만인 일을 그래도 이러한 수고를 들여서 하는 이유는
각자가 깨닫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에너지가 본인에게만 집중되어 결국 그게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개와 같이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에너지 순환을 통해 서로 살아보려고 저러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