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직함은 자격이 아니라 책임이다

스타트업 아포칼립스 : 이들은 왜 C레벨을 ‘직함’으로만 소비했는가 ①

by 승준

스타트업에서 C레벨이 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초기에 합류하기만 하면 됩니다.
기획서를 같이 써줬고,
첫 사무실 계약서에 이름을 올렸다면—
누구나 CMO, COO, CPO, CBO가 됩니다.


이런 방식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초기에는 직무와 역할이 혼재되고,
사람보다 일이 먼저 굴러가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직함이 고정되는 순간부터,
문제는 시작됩니다.


그들은 스스로 그 자리를 ‘배워야 할 책임’이 아니라
‘지켜야 할 타이틀’로 생각합니다.

성과보다 직함이 먼저였고,
경험보다 포지션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성장은 멈추고,
관리는 흐려지며,
책임은 아래로 흘러갑니다.

연봉 인상은 누구보다 빠르고,
옵션은 누구보다 먼저 행사하며,
성과 리뷰 회의는 건너뛰면서도,
외부 행사와 인터뷰에는 적극적입니다.


실제 사례입니다.
한 스타트업의 CPO는 본인이 제품을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신입 PO가 제안한 고객 여정 리디자인에는
"그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잘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기능 출시는 계속 실패했고,
고객 이탈은 높아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를 "실행력 있는 제품 책임자"라고 소개했고,
대표는 그런 그를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오래 함께한 사람인데…"


시니어가 들어오면,
그들을 환영하는 척하지만 실은 ‘관리 대상’으로 둡니다.
진심으로 배우려 하지 않고,
자신들이 쌓은 얕은 경험을 기준 삼아
모르면 배척하고,
다르면 비난합니다.


한 인사 담당 시니어는
10년 경력을 갖고 합류했지만,
초기 멤버에게 "우린 이런 식의 HR은 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들은 후 3개월 만에 퇴사했습니다.
그 조직의 문제는 인사 전략이 아니라,
조직이 전략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직함은 자격이 아닙니다.
성과 없는 C레벨은
조직의 성장을 가로막는 ‘위장된 관리자’일 뿐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반복되는 채용 실패의 진짜 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