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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은 들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닿는다

스타트업 아포칼립스 : 왜 전문가를 불렀는가 ①

by 승준

나는 어느 스타트업에 시니어 리더로 합류했다.
10년 넘게 다양한 규모의 조직에서 구조를 만들고, 위기를 돌파하고, 사람을 남기는 일을 해왔다.


그 회사는 성장하고 있었다.
투자를 받았고, 채용을 확대하고 있었고, 대표는 말했다.


“이제 우리도 전문가가 필요해요.”


그 말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믿고 들어갔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들은 전문가의 말을 듣기 위해 부른 게 아니었다.


그들이 원한 건 '조언'이 아니라 '동의'였다.
의사결정은 이미 내려져 있었고, 내가 필요한 건 그 결정을 합리적으로 포장해줄 누군가였다.
말하자면, '경험 있는 명분'이었다.


브랜드 재정비를 제안했을 때,
“우린 지금 이 무드 잘 먹히고 있어요.”


인력 구조 개편을 설계했을 때,
“그건 너무 딱딱해서 우리답지 않아요.”


성과관리 지표를 설정하자고 했을 땐,
“스타트업에서 그렇게까지 숫자 볼 필요 있어요?”


성과 없는 구조, 의사결정 없는 미팅, 리더십 없는 팀 사이에서 나는 반복해서 말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대표는 항상 듣는 척 했다.
회의에서는 고개를 끄덕였고,
“정말 좋은 관점이에요.” “그 방향 맞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서면 바뀌는 건 없었다.
진짜 결정은 그의 고집과 직감, 그리고 과거의 기억 안에서 이미 내려져 있었다.


회의실에서는 '듣는 사람'이었지만,
실제로 조직을 움직이는 건 감정과 과거 경험에서 오는 고정관념이었다.
정책을 수립할 타이밍에 분위기를 핑계로 미루고,
조직문화 문제를 '우리만의 색깔'이라며 회피했다.


나는 물었다.
“대표님, 그렇다면 저는 왜 여기에 있습니까?”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저희 팀원들 사이 조율도 필요하고, 실무에도 깊이 있게 좀 봐주시면 좋겠어요.”


그제서야 분명해졌다.
그는 ‘의견’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본인의 선택을 정당화해줄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진짜 전문가가 아니라,
‘내 생각을 예쁘게 말해주는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시니어의 역할은 ‘판단’이 아니라 ‘방패막이’로 쓰였다.


그 후로 나는 '조언하지 않는 조언자'가 되었고,
'결정권 없는 리더'가 되었다.


조직은 무너지고 있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책임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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