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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간다

스타트업 아포칼립스 : 왜 전문가를 불렀는가 ③

by 승준

회사의 재무 구조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투자 유치는 생각보다 더뎠고,
매출은 계획만큼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운영비는 고정적으로 나가는데,
그 중 가장 큰 항목은 단연 인건비였다.


나는 재무 담당자로서 수치를 매일 확인했다.
하지만 내가 진짜 보고 있던 건 숫자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언제부터 급여 지급에 이상이 생길지를
나는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말을 꺼냈다.
“대표님, 지금 이 구조로는 2개월 내 유동성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제 선택이 필요합니다. 팀의 중심을 유지하면서 생존 가능한 구조로 전환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모두를 잃을 수는 없습니다.”


대표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3주가 지났다.
그 사이 아무런 조정도,
선제적 대응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버텼고, 우리는 조용히 무너져갔다.


신규 계약은 중단됐고,
급여 지급은 연체 직전까지 갔다.
퇴직금은 예정 시점에 맞춰 계산할 수 없었다.
회계팀은 월말마다 직원 계좌 잔고와 지급액을 나란히 놓고
*“기다려달라고 또 말해야 하나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다시 보고했다.
“이제는 실제 조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법적 리스크까지 갑니다.”

그 순간 대표는 고개를 들어 말했다.
“사람 내보내는 건 HR에서 정리해주세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까지 수치를 보고 있었던 사람은 나였다.
지금까지 알림을 주고받았던 사람도 나였다.
하지만 그 모든 선택의 무게는
다른 부서에 ‘처리’하도록 넘겨졌다.


그 누구보다 이 상황을 만든 사람이,
그 누구보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했다.
그는 ‘결정자’이면서도,
'결정자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했다.'


같은 시기에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사업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콘텐츠는 무조건 터질 것 같은데 지금이 타이밍 아닌가요?”

나는 물었다.
“대표님, 그 기획 실행 가능한 인력과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까요?”
“당장 급여도 밀리고 있는데, 새로운 예산 항목을 열 수는 없습니다.”

그는 대답 대신 침묵했고,
며칠 후 팀장 채널에는 새로운 지시가 올라왔다.
“이 기획 다음주 안으로 파일럿 돌려보세요.”


문제는 명확했다.
회사의 인력도, 자본도, 리소스도
기존 유지만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그 어떤 기획도
로드맵 없이,
역할도 없이,
전략도 없이 떨어졌다.


기획서를 다시 요청하면
“너무 느린 거 아니에요?”
실무가 어렵다고 하면
“그럼 안 해볼 건가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결국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았고,
회사 안팎 모두에서
“실행 없는 아이디어 회사”라는 말이 퍼졌다.

투자사는 그 시점부터
‘수치’를 넘어서 ‘신뢰’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신뢰는,
대표 한 사람으로 인해 깨지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내보내야 하는 순간이 와서야
비로소 ‘리더인 척’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리더십이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시켜 해결하게 만드는 구조였다.


회계는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나는 그날 처음으로,
돈이 아니라 사람의 무책임을 정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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