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아포칼립스 : 이사회는 누구를 지키는가 ①
어느 날, 회의가 짧아졌습니다. 메일이 줄고, 사람들의 말수가 줄었습니다.
회사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회사는 무너졌습니다. 소리 없이, 아주 천천히.
서양의 이사회는 다릅니다.
대표는 교체 가능한 ‘경영자’이고, 이사회는 그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주인단’입니다.
이사회의 책임은 분명하며, 독립성과 감시의무는 제도적으로 보장됩니다.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대표가 대주주이고, 이사회 의장이고, 회사를 실질적으로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내이사는 대부분 그 사람의 오랜 동료거나, 무게 중심이 기울어진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이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 이름 아래서 한 일이라곤 ‘동의’와 ‘기록’뿐이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감시’는 ‘묵인’이 되었고, ‘조언’은 ‘침묵’이 되었습니다.
회사가 흔들리고 있을 때, 누군가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업 계획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걸. 인력 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걸. 대표의 판단이 자주 틀리고 있다는 걸.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내이사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의 시선을 피하고, 분위기를 맞추고, 때로는 스스로를 ‘전문가가 아니라서’라고 변명했습니다.
투자사는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표 리스크’라는 말이 내부적으로는 오갔지만, 정작 회의에서는 “대표님 의중은 어떠신가요?”라는 질문만 남았습니다. 그들은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책임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투자사 중 일부는 아예 대표의 결정에 손뼉을 쳐주었습니다. 직언 대신 회유를 택했고, 개입 대신 동조를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회사가 ‘건강한 회사’가 되는 것보다 자신들의 투자금이 ‘이익으로 돌아오는 구조’만 유지되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사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의 판단이 비합리적이어도, 구성원 이탈이 심각해도, 회사의 핵심 가치가 무너지고 있어도—
주주로서, 이사로서, 경고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마지막 투자 회수 타이밍이 올 때까지, ‘대표와의 관계’를 관리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회사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무너졌습니다.
대표는 브레이크 없이 질주했고, 사내이사는 고개를 숙였고, 투자사는 입을 닫았습니다.
그 시간 동안 무너진 건 매출이 아니라 신뢰였고, 회사가 아니라 구성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애써 외면하는 사이— 누군가는 직장을 잃고, 누군가는 번아웃으로 병원에 갔으며, 누군가는 조용히 회사를 등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