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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는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스타트업 윤리 : 이사회는 누구를 지키는가 ②

by 승준

그들은 왜, 침묵했는가


회사는 조용히 무너졌습니다.

그 조짐은 분명히 보였습니다. 재무 보고서에 찍힌 적자, 반복되는 인력 유출, 설득력 없는 사업 방향, 불투명한 자금 운용, 그리고 내부에서 퍼지는 불신.

그걸 ‘몰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내이사도, 투자사도, 정보를 받았고, 회의에 참여했고, 문서를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방향은 틀렸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침묵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직언은 관계를 해치고, 개입은 대표를 자극합니다. 대신, 조용히 기다립니다.

대표가 ‘스스로 판단하길’.


그리고 가능하면, 투자금 회수 시점까지만, 버텨주길.

그들은 회사를 믿은 게 아니라, 자기 계산을 믿었습니다.

“이 정도면 아직 시장에서 회수 가능해.”
“지금 대표 자극하면 더 큰 혼란이 올 수도 있어.”
“어차피 지분은 있으니, 마지막 딜은 우리가 가져올 수 있어.”

그 계산 속에는 사람도, 조직도 없었습니다. 오직 ‘리턴’만 있었습니다.


한 투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기업 운영에 개입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또 다른 이사는 말했습니다.
“결국 창업자가 책임져야죠.”


맞습니다. 책임은 대표가 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책임이 명확히 실패할 것을 알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과연 책임이 없는 걸까요?


자리가 있으면, 책임이 따릅니다.지분이 있으면, 감시가 따라야 합니다.


회사의 부실이 분명해질수록, ‘경고의 의무’는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그걸 외면한 순간, 침묵은 방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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