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그리고 엄마
추운 겨울날, 현관문 앞에 앉아 신발 끈을 묶는다.
부엌에 있던 앞치마를 멘 엄마는 내게 와 말을 건넨다.
"아들, 옷 따스하게 입고 나가"
나름 무겁게 오리털 잠바까지 입었지만 엄마의 온기 섞인 말로 인해 옷 한 겹이 더 두터워진다.
호호 불면 김이 어디까지 날아가는지 몰라도
집 앞에 얼어붙은 연석을 보면 날씨가 춥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오늘은 중랑천 월릉교로 러닝을 하러 가는 길이다.
1주 전에는 청계천, 2주 전에는 한강 그리고 석촌호수 올림픽공원 등등..
추워서 실내에서 뛰고 싶지만 러닝의 재미 요소는 바뀌는 풍경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매주 러닝 코스를 다르게 뛰고 있다.
일단 중랑천을 뛰면서 좋은 점은 평소에 보지도 못하는 하늘을 자연스레 쳐다보게 된다.
하늘을 보는 것은 여유로움을 뜻하기에 뛰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건너편에 석양빛을 받고 달려가는 열차를 보며 가끔 대결을 하는 나 자신을 무한 도전의 유재석이 된
마냥 피식 웃게 된다.
한강은 깜빡거리는 차들이 만드는 구불구불한 빛들을 보며 내 안에 많은 생가들을 그 빛을 타고 저 멀리 떠나
보낸다.
낮에는 내리쬐는 햇살과 한강의 물결이 만나 앞으로 나아가며 나와 같이 대교들을 성큼성큼 넘어간다.
그리고 내 앞을 가로지르는 자전거 군단과 하중이 가벼워 보이는 러너들을 보면서 영감을 받고 에너지를
충전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뛸 때 바닥이 다소 불친절한 석촌호수와 청계천은 러닝보다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가장 크다.
석촌호수에서는 벤치에 앉아 놀이기구를 바라보며 낭만에 대해 떠드는 커플, 청계천에서는 세대불문하고 두 손 꼭 잡고 가는 연인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가면 그 좋은 기운이 뛰는 내내 온몸에 머금게 된다.
이런 생각들 사이에 추위가 낄 틈이 있을까? 방심한 틈
을 타 확실히 차가운 바람이 내 몸 구석구석에 마중하러
나온다.
차츰 추위가 가라앉는 때를 기다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경쟁이 가득한 사회에서 러닝 할 때만큼은 언제든 뒤쳐져도 상관없기에 뛸 때만큼은 오로지 내가 능동적
인 내 삶의 주인이 된다.
유행하는 헬스 시계 없이도 기록하지 않고 러닝을 즐기다 보면 혼자 10km 거뜬히 달리게 된다.
물론 10km까지 달리기까지는 고비가 참 많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다리 통증이다.
한 때 러닝에 푹 빠져서 하루에 15km도 뛰어봤지만 다음날 오른쪽 무릎에 무리가 와서 러닝을 무려 한 달동
안 쉰 적이 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뛸 때 절대 무리해서 뛰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뛰면 땀에 흠뻑 젖어서 목적지에 다다르면 몸에 누적된 묵은 체증이 확 씻어 내려간다.
여름에 러닝 하면 더워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지만 겨울에는 러닝이 끝나고 나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집으로 들어가 물 한 모금 정도면 충분하다.
러닝은 하다 보면 같은 거리라도 힘듬의 정도가 다르다. 예를 들면 한강에서 10km와 올림픽공원 10km..
한강은 평평해 친절한 도로이지만 올림픽공원은 뛸 때마다 다양한 땅바닥을 마주하고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된다.
겨울에 땀이 안 나서 음료수 맛이 떨어진다면 당당히 올림픽공원과 어린이대공원 러닝을 추천한다.
러닝 하는 곳이 다 집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곳이라 집에 갈 때는 다리는 내 것이 아니기에
정기권이 있으니 전철을 애용한다.
러닝을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동네로 걸어가는 길
집 앞에서 오른쪽 주머니에 든 열쇠를 꺼내려다가
엄마의 "누구세요"를 듣고 싶은 마음에
오래된 초인종을 꾹 눌러본다.
"누구세요"
"나예요, 엄마 아들"
날 마중 나오기 위해 현관문에 선
앞치마 멘 엄마는 아이 같은 미소로 날 반겨준다.
향긋한 갈치 냄새에 빨래통에 허물을 벗어던지고
나의 하루는 마무리된다.
어머니의 한 겹은 나의 포옹으로
대신하며 나의 하루는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