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표

더벅머리

by 천문학도

4년 전쯤이었다.

더벅머리의 친구가 입학했다는 것을 알았다.


긴 수험생활을 견딘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마음으로 큰 격려를 하고 있었다.


남들이 보낸 20대의 시작은 그 친구에게 30이 돼서야 시작되었다.


외가도 친가도 의사 또는 고학력 스펙을 가진 친척들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의대는 그 집안의 깊은 내력이었다.


한참 중학교 때 공부하기 싫어 약하고 바보같이 보이는 애들이 눈에 들어왔을 시점에 더벅머리 친구도 그 부류에 속해 있었다.


다른 공부는 평균이었어도 수학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다 열정이 대단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몇 번 물어보면 자신만의 방법으로 풀면서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정규 과정도 벅찬 나에게는 그저 머리 아픈 방법이었다.


괜히 만만해 보여서 못된 추파를 던지면서 놀리는 그 친구를 위로를 못해줄 망정 옆에서 나 또한 웃고 떠들었다.


점심이 목적인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있을까 싶어도 열렬한 수학 선생님을 만나서 수학에 제대로 입문하게 된다.


초록색 칠판에 미지수 두 개와 두 개의 직선 그래프가 그려져 있다. 미지수 각각 x y 정의역과 공역, 기울기의 정의..


일직선 두 개가 평행하는가 교차하는가 뭘 그리 중요한지 전혀 와닿지 않았다.


흰 백발의 안경 쓴 수학 선생님은 진도를 천천히 나가며 하위권인 나에게도 이해를 할 기회를 주셨다.


그 기회를 발판 삼아 더벅머리 친구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수학에 흠뻑 빠져서 내가 이해하는 것이 이게 맞는 그 친구에게 늘 묻곤 했다.


점심 먹으러 간 학교에 수학수업을 들으러 가게 되었다.


등하교 시간에도 문제집을 들고 다니면서 열심히 풀었다.


중학교에서 일직선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 담벼락은 가끔은 책상이 되어 문제풀이를 할 수 있었다.


그런 날이 반복되다 보니 더벅머리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말한다.


"나 너 어제 봤어, 열심히 수학문제 풀던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해 너 좀 대단하더라"


늘 하교하면 교문에서 기다리는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가는 그 친구는 여러 번 나를 본 거 같았다.


네가 공부해 봤자, 거기서 거기지 비난하는 친구들 사이에


있다 보니 그 말을 듣기 원했다 아니지 들어야만 했다.


두 학기가 흐르고 수준별 수업에서 오일러반으로 가게 되었다. 오일러-가우스-피타고라스-데카르트 성적의 오름차순으로 진열된 반이었다.


모두가 인정하기 싫었어도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밞아 높은 곳에 올라갔다. 내가 성장하는 사이 그 친구는 올림피아드 시험까지 섭렵해가고 있었다.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에 올라갔지만 인생을 결정하는 첫 시험에 고배를 마셨다. 나는 노량진으로 그 친구는 기숙 학원으로 같은 신분이 되었다.


나는 운 좋게 얻어걸려서 노량진을 탈출했고 그 친구는 그 신분을 벗어나는데 자그마치 10년이 걸렸다.


그 10년이 빛을 바라듯 의대는 아니어도 지방국립대 약대에 진학하였다.


입학할 때 걱정을 많이 했지만 적응도 잘하며 잘 살겠지 가끔 연락했지만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텅텅 빈 냉장고를 채우러 나간 길에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에 지나가는 차 2대, 1대는 비싼 사과를 가득 실은 포터 차량 다른 1대는 익숙한 검은색 승용차가 보였다.


내리는 사람은 없었어도 보이는 사람은 더벅머리 그 친구였다.


아마 중간고사가 끝나서 고향에 잠깐 내려온 거 같았다.


중학교 때처럼 다를게 없이 그 녀석의 책가방은 무거워서 찢어질 정도였다.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이 더벅머리에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다닐까?


나는 그의 징표가 참 맘에 들어서 한마디 뱉는다.


"더벅머리 고기 사줄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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