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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문학도 Apr 25. 2024

제 1화 봉고차 2047

'나'의 시작점

우리집 차는 두대다.아버지의 업무용 차량 그리고 어디 놀러갈때 쓰는 suv 차량이 있다.


아버지의 업무용 차량의 초기 버전은 2047 번호판을 가진 초록색 봉고차였다.


어렸을 때,초등학교에서는 아버지의 직업란을 쓰는 칸이 있었다.난 어김없이 아버지의 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자영업자'라고 썼다.


학교에서 끝나면 투니버스에서 나오는 만화를 챙겨보기에 정신이 없었다.어떻게든 1분~2분 더 볼려고 학원갈 시간이 되면 동덕여대를 지나 자그마한 보습학원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떤 날은 재미없는 애니가 나와서 천천히 학원으로 걸어갈때 쯤,2047번 번호판을 가진 초록색 봉고차가 지나갔다.


한번 업무용 차량을 사게 되면 보통 10년을 넘게 쓰는 경우가 허다해서 아버지의 차량도 많이 아파보였다.


트렁크 문은 제대로 닫히지 못해서 자물쇠로 잠궈버렸고,차 안에서는 약국에 납품할 약들로 조수석까지 꽉 차 있었다.


그래서 퇴근하고 온 아버지의 옷에서는 늘 약품냄새가 났다.


어느 날은 학원 친구들이랑 일찍 만나서 학원을 가는 길 도중에 아버지의 차량이 지나갔고 나는 숨어버렸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 창피해 보였다.


그저 그 시대에 나는  무엇도 모르고 회사원이 멋있어 보였고,매일같이 일하느라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보이지 않았다.


중2쯤 넘어가니 피곤한 사춘기가 왔다.주변인이라는 표현이 정말 와 닿았다.학교에서는 생각 없니 수업 듣다가 밥 먹고 한 교시를 잠으로 날리고 집에 와서는 누워서 티비 보기 일수였다.


그리고 영혼 없이 학원으로 습관적으로 향했다.

학교에서도 창문 밖에 마음이 있었는데 학원은 오죽 했을까? 학교보다 작은 공간이라 더 답답해서 오래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거의 펜을 들지 않고 의무적으로 '학교-집-학원-집'을 반복했다.학원 끝나고 집가는 길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길에 차 연석쪽에 임시로 주차된 아버지의 차량을 보았다.


동네약국 앞이였다.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까먹은 채 약국 앞으로 나는 향했다.


아빠는 약국의 헛드레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약품의 먼지 털이,약품 정리,쓰레기통도 비워주고..나는 그저 약품만 납품하고 끝인지 알았는데

그건 표면적인 일에 불과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학교,학원에 다니는 비용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아버지의 헛드레일을 보고 나서는 내가 그 동안 날린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운좋게 펜을 잡게 되었다.

아버지의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니 그냥 열심히 살아야겠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티비를 배신하고 열심히 우등생 학원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약품냄새..

그리고 약품들을 꽉꽉 채워서 닫히지 않은 쇠 자물쇠로 잠긴 트렁크 문..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의 목숨을 짊어지고 다녔던 아버지의 초록색 봉고차였다.


그리고 그 작은 자물쇠로 가족이라는 우리는 보호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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