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형 Jan 25. 2021

조용한 열정, Emily Dickinson


2017년에 미국의 은둔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1830~1886)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조용한 열정, A Quiet Passion>이 개봉되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주관과 소신이 뚜렷했던 독신 여성 작가의 일대기이다.


주인공이었던 디킨슨은 뉴잉글랜드 출신으로 신학대학에 진학하였으나 강압적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대학을 중퇴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1800편 가까운 시를 썼으나 생전에 발표한 시는 고작 7편일 정도로 사회와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당시 사회는 청교도적인 엄격함과 남성 중심의 의사 결정권이 지배적이었기에 여성은 제한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야만했다.


시인은 당대의 사상가인 랠프 월도 에머슨 등의 영향을 받아 초월주의 경향의 작품을 남겼다. 또한 몇몇 목사들과의 친분도 깊었으나 그녀는 신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편이었다. 시인은 시와 편지를 통해 주로 자연, 사랑, 고독, 죽음 등을 노래했다. 그녀의 작품에는 시기에 따라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갈망과 신의 은총에 대한 갈구가 혼재한다.



How happy is the little stone?

길에서 뒹구는 저 작은 돌
얼마나 행복할까
세상 출세랑 아랑곳 않고
급한 일 일어날까 두려움이 없네
              ...
혼자 살며 홀로 빛나는 태양처럼
              ...                             


작은 돌은 아마도 작가 자신의 투영물일 것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주류 사회의 종교적 분위기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신조를 지켜나갔다. 그 때문에 그녀의 시는 당대에 환영받지 못했고 사후에 출판되어 반향을 일으켰다.
자아의식이 강했던 그녀는 보수적이고 획일적인 환경 속에서 사랑에 실패하였기에 스스로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슬픔처럼 아련하게
여름은 스러지고 말았다...
너무나 아련하여, 차마,
배반 같지도 않았다. (중략)



억압적인 종교 분위기와 여성의 사회 활동을 경원시하는 전통 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한 여성의 열정과 좌절과 고독이 시구에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그녀의 시에는 제목이 붙어있지 않아서 첫 줄을 제목으로 다시 붙이기도 한다.
시인의 세상에 대한 열정과 희망은 다음 구절에 잘 드러난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중략)



관습으로 얽매인 시대를 앞서갔던 시인은 현실에서는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날카롭고 번뜩이는 시구는 오늘도 우리가 살아 있는 인간임을 각성시키고 있다.
작가의 은둔은 타협으로부터 시인의 예술혼을 지키려는 마지막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의 마지막은 강렬하면서도 쓸쓸했다. 그녀는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That Love is All There is


That Love is All There is,
Is all we konw of Love;
It is enough, the freight should be
Proportioned to the  groove.


이 세상에 사랑밖에 없다는 것


이 세상에 사랑밖에 없다는 것,

사랑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것뿐;

그러면 충분하지.

사랑의 무게를 골고루 고랑에 나눠줘야겠다.








        이 세상에 사랑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아침에 새겨야 할 에피그램(Epigram)으로 다가온다.



(좋은데 오늘 님의 멋진 영시를 감상하다가

예전에 다른 곳에 올렸던 글을 옮겨왔다. 타인의 글은 때때로 자신을 발굴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