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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with 풍경
제주 바다
은갈치의 꿈
by
김도형
Mar 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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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
깊고 푸른 바다는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끝없는 심연의 공포를 선사한다.
밤바다의 끝에서 빛나는 물체들의 정체는
위태로워 보인다.
밤 깊은 시간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는 소리 없는 존재
.
보는 이조차 불안해진다.
불빛을 미끼로 쓰는 사내들은
똑바로 서서 헤엄치는 은갈치와
고결하리만치 투명한 한치를 낚는다.
거친 바다에 목숨을 건 그들의 운명은
용왕의 손안에 있다.
그들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도 물질을
거부할 수가 없다.
그것은 뱃사람의 운명.
높은 파도를 기꺼이 맞이한 그날, 불안한 꿈에 뒤척이는 이는 뭍에 남은 여인들이다.
그래서 바다는 늘 너울로 춤추고
바닷가엔 억센 아낙네와 아이들이 남았다.
오늘도 무사한 바다 형제들에게 전하고픈 것은,
사람의 삶을 동경하지 말지니 그곳엔 수많은 올무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명의 스러짐을 훈장으로 여긴다. 그대들이 한낮의 햇살을 피해 깊게 숨었지만 한밤 조각 빛은 갈고리를 품고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누군들 쉽게 피해 갈 수 있으랴...
육지의 도살자들을 피해 바다로 돌아간
고래야말로 현명하다.
친구들이여,
사람의 불빛을 피하라
인간의 인기척을 피하라
땅의 족속들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라
그곳에서
그대들만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번식하고
춤추라
밤이면 은하수에 오르고
낮이면 남극의 빙하 아래로 유영하며
그대들만의 언어로
그렇게
기꺼이
살라
아주 먼 옛날 내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라는 의문을 상기시키는 바닷바람.
파도에 실려오는 비릿함.
그 원초적인 냄새는 어미의 것이다.
그곳에서 왔지만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영원한 노스탤지어를 깃발처럼 펄럭이는 어머니,
사무치는 바다.
제주는 하나의 거대한 화산암 덩어리다.
저 멀리 사방에서 일어난 거친 물살이 화산암의 수많은 기공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진다. 출렁이는 파도는 혀처럼 백사장을 핥으며 읊조린다.
사람의 존재 또한 언젠가 부서지고야 말
한낱 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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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일어나 길을 걷다가 길 위에 눕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 길의 풍경을 묘사합니다. 또한 구독 행위에 매이지 않고 순간의 기분에 따라 이곳저곳의 글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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