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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Jan 13. 2021

눈 오는 저녁

평등한 손길


창밖으로 눈이 내니다.

6차선 도로엔 눈 모자를 쓴 차들이 가득합니다.

시간은 어느덧 다섯 시 반을 넘어가고 있고요. 앞차들 꽁지에는 반딧불처럼 노란 불이 켜졌습니다.

그리고 흩날리던 눈발은 주춤해졌습니다.

아스팔트엔 빗물처럼 눈이 녹아 흐릅니다.

젖은 도로 위엔 앞차의 실루엣이 어립니다.

창밖으로 승용차도 지나가고 견인차도 지나갑니다.

그리고 작은 유조차도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트럭은 천천히 속도를 늦추며 동행합니다.

트럭의 적재함은 텅 비어있습니다.

적재함의 칸막이는 여러 군데 흠이 나 있습니다. 구겨진 포장비닐만이 적재함에 놓여 있습니다.

그 위로 이불처럼 눈이 덮입니다.

그 눈은 왠지 따뜻해 보여 온도를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중년의 트럭 기사는 가족을 생각하는 듯 먼 곳을 응시하고 있군요.

도로 밖 작은 나무들은 미동도 없이 눈을 고 있습니다.

미풍도 없이 가만히 내리는 눈은 신비롭습니다. 차는 어느덧 1차선에서 오른쪽 선으로 흘러갑니다.

덕분에 나뭇가지와 덤불에 피어난 눈꽃이 선명해집니다.

눈은 작은 가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흰 선들그어냅니다.

비록 앙상한 가지밖에 없지만 나무는 저마다 하얗게 활짝 피어납니다.

그런 나무들갑자기 빠르게 지나갑니다.

차들은 정체구간을 지나 달리기 시작합니다.

점차 밖의 풍경이 뭉개지듯 흐려집니다 

먼 곳과 가까운 곳의 그림도 서로 분리됩니다.

정체로 무료히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흩어져 오릅니다.

차는 도로를 따라 좌회전합니다.

그리고 교각 아래를 지나 한강변으로 접어듭니다. 눈 내린 한강변 공원엔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다시 버스는 서행하고 가는 눈이 차창에 달라붙습니다.

눈은 차의 속도에 따라 흐르는 각도가 달라집니다. 저 멀리 지나갈 교각의 한가운데는 탑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그 꼭대기에는 한겨울에도 횃불이 타오릅니다.

눈의 장막은 횃불 위로 장엄하게 펼쳐집니다.

눈떼는 다리 아래 드넓은 강 위로 내려앉습니다.

강은 하염없이 녹아내리는 눈이 안쓰러웠나 봅니다.

며칠 전부터 몸을 얼려 내리는 눈을 맞이합니다.

그 위로 언뜻 까만색 점 몇이 보입니다. 이역만리에서 날아온 철새들은 마치 수행승처럼 미동도 없습니다.


아아, 님아.

벌써 강을 건너셨나요?


여울지는 길을,

눈 내리는 길을

한순간에 지나고 보니 자그마한 죄책감이 생겨납니다.




동서울 강변 터미널은 요새처럼 견고합니다.

이곳은 모든 여행자의 종착지이자 시발점입니다.

그리고 좌표 확인을 위한 잠깐의 멈춤만을 허락합니다.

터미널은 심장의 펌프처럼 흘러든 인생들을 또다시 사방으로 내뿜어 보냅니다.

그렇게 제각기 흘러나와 기차에 실려 또다시 강을 건너갑니다.

어둠에 물들어가는 강을 연거푸 대면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거리는 가로등을 켜고 검은 공기를 밀어냅니다.

그 불빛 아래로는 눈의 군무가 연이어 지나갑니다.

닿은 건물과 골목마다 엄숙한 표정으로 얼음 조각들이 반짝이며 내려앉습니다.




눈은 세속 도시에도 평등하게 내려옵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머리 위로 공평히 내립니다.

그렇게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어 태초의 색으로 소리 없이 덮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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