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형 Apr 06. 2021

낙화

만개한 벚꽃은 늘 봄비에 젖는다



검은 기둥에서 옅은 분홍빛 꽃이

나무는 잎이 돋기도 전에 수천 개의 꽃송이를 묶어 들고 봄의 길목에 도열했


작은 가지 끝까지 온통 꽃으로 장식하고

바람다가오면 흰모시 천을 펼쳐 들어

지난 계절의 살을 풀어내듯 이리저리 흔들어댔


겨우내 땅속의 수분을 빨아들여 향기로운

꿀을 빚어내고 곤충을 불러들여

수많은 혼사를 치러내는 신비


벌들의 날갯짓이 웅웅대며 사방으로 물결쳤다





갓 피어난 꽃송이들은 군락의 개화를 재촉하고

따뜻한 바람이 가지를 어루만지면

참았던 울음처럼

꽃망울들연이어 터져 버렸다


회색빛 직박구리 몇 마리가 나무를 옮겨 다니며

날카로운 부리로 꽃송이를 따물었


먹듯 말듯하다 마침내 꽃송이를 떨군 새는

 속에 황금빛 묘약이 들어있음을 어찌 알아서

연약한 꽃잎으로 목을 축이는 것일까


꽃은 가지에서 피어나 새의 입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람에 얼굴을 씻고

햇볕에 환하게 그을리고

날개 가진 손님들이 찾아와 파티가 무르익으면

대지의 여신은 비로소 분분한 낙화를 허락한


신의 옷자락이 대기를 진동시켜

크고 작은 기류들을 일으키면

가지들은 일제히 꽃받침의 나사를 풀어내고

송이마다 다섯 개의 빛나는 유성을 쏘아 보냈다


사람들은 꽃가지 아래에서 

차갑던 심장에 온기가 차오르면

황홀한 표정으로

다시 서로를 사랑할 용기를 얻었





바다와 육지 사이로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나

하늘에서 응결되어 구름으로 떠돌다

도시를 지나 숲에 이르면

남녘으로부터 출발한 꽃의 행보를 따라

촉촉한 비로 뿌려졌


그러면 바람에 눈처럼 날리던 꽃잎들은

비에 젖어 선명한 빛으로 대지에 내려앉았다


꽃이 가지에서만 피는 것은 아니다

 위에, 아스팔트 위에, 어깨 위에 머물러

순결한 눈동자처럼 빛나는  이파리


꽃은

땅에서 솟아나

하늘로 피어올랐다가

 다시금

해양습기를 머금고 바닥에 내려앉았다





 위로 햇살이 지나가고

비단 같은 바람이 출렁이며 흘러가고

그 속에서 잠시 머물던 사람들이 떠나가

생기 있던 꽃잎들이 머물던 가지엔

새파란 어린잎들이 돋아나고

언덕은 새로운 활기로

소란스러워





매거진의 이전글 백일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