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 앞바다에 비가 내리면
대교의 교각만이 장승처럼 우뚝 솟아나고
풍경은 비의 장막 뒤로 밀려났다
비는 부두를 적시고
맞은편 언덕 꼭대기의
밭이랑처럼 켜켜이 쌓인 마을의
낮은 지붕들 위로도 내려 앉았다
조각난 생들이 철길 따라 흐르는 곳
바다와 언덕을 가르는 기차역은
차가운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좁은 어깨로 움츠러든 행인들을 빨아들였다
어떤 이는 비를 맞으면서도
녹슨 못처럼 박혀서 역사를 떠나지 못하고
어떤 이는 검은 기억을 되짚어
밤마다 흔들리며 찾아오곤 했다
부산역 앞 바다는
그곳에 부려진 수많은 이야기를 펼쳐 들고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시멘트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철썩거렸다
한때 찬란하게 빛나던 사랑
그 오래된 사랑 이야기가
여름 바다 위로
비를 맞고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