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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Jul 19. 2021

너의 여름은


바람 한점 떨구지 않는 습한 오후

검은 기포로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굵은 빛으로 타오르는 붉은 벽돌 담장

시든 이파리로 겹겹이 둘러친 담쟁이덩굴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철로와 아지랑이

발작 같은 공사장의 바닥 깨는 쇠망치 소리

파란 연기를 쏟아내며 달아나는 자동차

그늘에서도 눈이 부신 빌딩의 미러 글라스

슬리퍼를 걸친 하얀 발과 종아리

대로변 뒷골목 식당의 뜨거운 환풍기 바람

쨍쨍한 열기로 팽창하는 옥탑방의 공기

쉼 없이 돌아가는 냉장고의 콤프레셔 소리

동네 커피집 얼음잔에 맺히는 이슬방울들

먹장구름 가득한 하늘의 위엄 있는 표정

비틀어진 소나무 사이로 흔들리는 검은 바다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뜨거운 모래 알갱이

빛만을 남기고 소멸된 낡은 별들이야기

수년을 걸려서 탈피한 매미의 투명한 날개

고추잠자리 몇 마리 유영하는 하늘 모퉁이

옛 절 수곽에 멱감는 까마귀와 산비둘기

가뿐 숨을 몰아쉬는 백구의 느린 걸음

겨드랑이 땀이 흐르는 옆구리의 끈적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모기떼의 절박함

밤새 꺼지지 않는 가로등불의 피로 얼굴

씻지 않은 음식물통의 시큼한 향취와 날파리

이른 아침 따갑게 이마에 내려앉은 햇살

파랗게 피어나는 할머니의 담배 연기

손등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의 찌릿한 촉감

새순마다 가득 매달린 푸른 진드기들

날마다 주고받는 의미 없는 말들의 미지근함

막걸리 대신 약을 삼키며 먹어 치운 감자전

수많은 새들의 카니발 삼복더위의 잔인 

쏟아지소나기로 생기를 되찾는 토끼

새벽 찬바람으로 다음 계절의 앞자락을 잡아당기는 손길


이렇게 너의 여름은 뜨거웠어

숨 막혔어

도망칠 곳이 없었어


너의 많은 여름이 

또 다른 이름으로

사방에서  죽인 채 번뜩이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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