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한점 떨구지 않는 습한 오후
검은 기포로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굵은 빛으로 타오르는 붉은 벽돌 담장
시든 이파리로 겹겹이 둘러친 담쟁이덩굴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철로와 아지랑이
발작 같은 공사장의 바닥 깨는 쇠망치 소리
파란 연기를 쏟아내며 달아나는 자동차들
그늘에서도 눈이 부신 빌딩의 미러 글라스
고무 슬리퍼를 걸친 하얀 발과 종아리
대로변 뒷골목 식당의 뜨거운 환풍기 바람
쨍쨍한 열기로 팽창하는 옥탑방의 공기
쉼 없이 돌아가는 냉장고의 콤프레셔 소리
동네 커피집 얼음잔에 맺히는 이슬방울들
먹장구름 가득한 하늘의 위엄 있는 표정
비틀어진 소나무 사이로 흔들리는 검은 바다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뜨거운 모래 알갱이
빛만을 남기고 소멸된 낡은 별들의 이야기
수년을 걸려서 탈피한 매미의 투명한 날개
고추잠자리 몇 마리 유영하는 하늘 모퉁이
옛 절 수곽에 멱감는 까마귀와 산비둘기
가뿐 숨을 몰아쉬는 백구의 느린 걸음
겨드랑이 땀이 흐르는 옆구리의 끈적임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모기떼의 절박함
밤새 꺼지지 않는 가로등불의 피로한 얼굴
씻지 않은 음식물통의 시큼한 향취와 날파리
이른 아침 따갑게 이마에 내려앉은 햇살
파랗게 피어나는 할머니의 담배 연기
손등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의 찌릿한 촉감
새순마다 가득 매달린 푸른 진드기들
날마다 주고받는 의미 없는 말들의 미지근함
막걸리 대신 약을 삼키며 먹어 치운 감자전
수많은 새들의 카니발 삼복더위의 잔인함
쏟아지는 소나기로 생기를 되찾는 토끼풀
새벽 찬바람으로 다음 계절의 앞자락을 잡아당기는 손길
이렇게 너의 여름은 뜨거웠어
숨 막혔어
도망칠 곳이 없었어
너의 많은 여름이
또 다른 이름으로
사방에서 숨 죽인 채 번뜩이고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