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형 Aug 01. 2021

국수를 생각하며

비 오는 날의 국수


국수 그릇을 바라보 울음 삼켰


창밖에는 전국 곳곳의 비가 내렸다

무더위가 한풀 꺾여도 체감 온도는 제자리였다


국수틀을 본 적도 없는 이들 때문에

나의 눈물이 뚝뚝 끊어졌다


돌풍과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지고

낮은 수풀은 푸른 번갯불에 깜짝깜짝 놀랐다


마른바람 소리를 내며 썰어낸 국수 다발

촘촘히 키를 맞춰 백지로 둥글 말아냈


은 빗방울은 칠월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얼굴보다 큰 오동잎 위에도 풀숲 위를 기는 호박잎 위에도 드럼을 치며 내려앉았다


국숫집 아들은 궂은 날이면 아비의 낯을 살폈다

눅눅한 날에는 국수가닥들도 침울한 표정으로 구석에 나란히 서 있었


장대비는 달리는 말 떼처럼 먼지를 일으켰고 냇물은 흙탕물로 가득


비처럼 내려선 국수 가락들은 마침내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걸어 나갔


어메는 말없는 지아비를 위해 감자수제비를 끓였고 아들은 허연 밀가루 묻은 손을 털어냈다


7월의 어느 비 오는 날,

<나는 국수가 먹고 싶다>를 읽고 흑백사진처럼 서러워졌다



(이상국 시인의 나는 국수가 먹고 싶다를 읽고 나서 썼다. 마침 밖에는 비가 내렸다. 국숫집과 여름 비 오는 풍경을 교차해가며 묘사해 보았다. 마음에도 비가 내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미의 뜻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