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때로는 조용한 골목길을 찾게 된다.그중의 하나가 공원으로 산책 가는 방향에놓인 골목길이다.
그 길은 사람들로 붐비는 공원길과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밀집된 골목 사이로 난 일방통행의 좁은 골목길이다. 골목의 양 옆은 각 건물의 뒷문이 마주하고 있을 뿐이어서 아주 한적하다. 그 길은 가끔씩 속도를 내기 위해 찾아오는 배달 오토바이가 달릴 뿐 차량도 뜸하다. 인적도 없는 이 길의 끝에 서면 매번 난데없이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라고 읊은 박목월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대도시의 번화가 한복판 골목길이 황토 먼지 날리는 남도 길을소환해낸다.
인구가 적은 지방의 변두리 마을로 갈수록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친숙하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가면서 알게 된 각자의 개별적인 정보로 서로를 파악한다. 그러므로 마주치는 눈빛만으로도 상대방의 모든 내력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은 도시와는 달리 정보를 습득하기에 적절한 사람 수와 비교적 느슨한 생활 방식 때문에 생겨난다.
반대로 삶의 속도와 이동 횟수가 일정한 수치를 넘어서면 이웃과의 공동체 의식은 자연스레 와해된다. 대도시에 사는 과밀한 인구의 부단한 활동은 개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익명을 부여하게 된다. 고유한 이름은 있을지언정 생활 근거지에서의 서로에게는 그저 몇 호 사람이란 부호에 불과한 것이다. 존재의 과밀한 집적도로 인해 생물학적 감성의 수용도가 초과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 간에 구체적 관계의 느낌이 없는 감각의 진공 상태에 빠져 버린다.
대도시 서울이야말로 정현종 시인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는 표현 무대로 가장 적합한 배경이다. 어찌 보면 이곳 서울은 거대한 호수요 출렁이는 바다이다. 그리고 멀리 있는 그대와는 어찌할 수 없는 섬을 사이에 두고 있다. 부부로 산다한들, 부모 자식으로 산다한들 그 섬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사는 이 바다에는 섬들이 너무 많아 사람을 향한 그리움도 그리움 같지 않다. 섬들 사이에 무늬 지는 황혼도 눈길을 끌만큼 선명하지 않다.
움직이지 않은 섬들, 그것은견딜 수 없는 고독이다.
시인은 이어서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으니 내가 파악한 의도와는 다를 수도 있겠다. 나만의 해석은 내고유한 의지의결과이니까.
이성복 시인은 <섬>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 섬과 섬이 만나 자식을 만들었다. 끝없이 너른 바다를 자식 섬은 떠돌았다... 떠돌며 만난 섬들은 제각각 쓸쓸했고...> 섬은 파도와 풍랑에 의해 떠돈다. 그건 세상사와 다름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풍경은 마침내 쓸쓸함이다.
외진 길을 택함은 분명 번잡함과 사람들을 피하려는 의도적인 행위이다.그 길의 시작에 서면 저 멀리 끝이 보이지만 그 끝은 아스라하여 아니 보일 듯도 하다. 그리하여 짧은 길을 이리저리 천천히 늘려 걷는다.
고개를 들면 건물의 유리창이 반짝 눈을 뜨고 내려다보고 낮은 하늘에는 전선과 통신선이 어지러이 엉켜 달린다. 일층의 철제문은 영원처럼 굳게 잠겨 있는데 어디선가 눅눅한 담배 연기가 흘러나온다. 매운탕집 간판의 메뉴를 찬찬히 훑어보고 아무도 없는 식당 내부를 보며 시간을 가늠해본다. 마침내 길 끝 언저리에 다다르면 그 앞에서는 공간의 터짐이 비약적으로 전개된다.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면 시간 또한 마음의 흐름에 따라 과거로 향한다.
사실 이 좁은 외길 끝에는 섬이 있어야 한다. 아니, 엄연히 존재한다. 시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섬이 있다. 나는 솔직이 그 섬에 발을 딛는 것이 두렵다. 그 섬은 나에게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그 골목은 의미가 있다. 어쩌면 정 시인의 노래처럼 나에겐 그곳에 가고 싶다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고요한 골목길에 선 홀로임. 그 양 끝의 생동감은 때때로 무기와 같이 작용한다. 그래서 그 날카로움을 피해 오랫동안 골목 안에서 서성이는 것이다.남도의 황토 흙먼지 길을 가듯 한적하게 유랑하고픈 것이다.(이젠 코로나 재확산으로 골목길을 걷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광화문 집회로 촉발된 전국적인 코로나 재확산 사태로 2.5단계 거리두기가 어제부터 시행 중이다. 주말엔 다시 태풍이 한반도로 북상한다는 소식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존재가 세상을 감싸고 소식은 흉흉하다. 전염을 억제하기 위해 문을 걸어 잠그고 잠잠해진 세상, 감정선도 가라앉는다. 의식의 창도 닫히고 마음마저 창백해지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