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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Nov 27. 2021

퀘 렌시아

박지향 작가의 <초대>를 읽고


그들은 나를 자극했다

때리고 모욕했다

그리고 포도주에 알지 못할 가루를 타서

내 식탁 위에 올렸

나는 피가 끓어올라 벽이라도 부술 것만 같았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원형 경기장에 들어서자

무수한 함성이 쏟아졌


움직이는 붉은 몸체

상대를 노렸으나 그 뒤엔 아무것도 없었다

단 한 사람

화려한 복장의 남자만이

미동도 없이 그 옆에 서 있었


펄럭이는 붉은 천을 지날 때마다

등과 목에는 창이 하나씩 혔다

그때마다 남자는 몸을 빠르게 회전시켰

온 몸에 피가 흘러내리자 분노가 솟구쳤다


좌우로 위아래로 몇 번을 달리자

사람들외침화살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랐


잠시 숨을 몰아쉬며 뒷발로 땅을 긁어댔다

입 밖으로는 끈적한 침이 길게 흘러내렸다

붉은 천막 너머로 엄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얘야,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란다...


남부 바닷가 바람 부는 언덕 위에서

함께 풀을 뜯으며 소요하던 기억

엄마는 가끔씩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했다


마침내 내가 쓰러지면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곤

피투성이가  몸을 퀘 렌시아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나 내가 희망하는 퀘 렌시아는

유희로 놀림을 받지 않는 곳

광기로 싸움을 부추기지 않는 곳

분노로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곳


이제 단 한 번의 시도만이 남았다

모자를 쓴 남자는 승리를 확신한 듯 웃으며

창을 높이 들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붉은 장미가 잠깐 그의 등 뒤로 돌아는 순간

목표가 뚜렷해졌다



* 시작 노트 :

캐나다의 리타이어먼트 센터에서 근무하며

목격 삶의 소리를 진지하게 기록 중인 박지향 작가님.

그녀의 글 중 <초대>를 읽고 감흥이 솟아났다.


치명적인 상처 치유를 위한 피난처, 성소를 속히 찾지 못하면 생명 있는 자모두 위험하리...

작가의 글은 그러한 쉼터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단단한 벽돌과도 같다.


아래에 님의 글 일부를 캡처한 사진으로 퀘 렌시아의 뜻을 전한다.

* 표지 사진 - 흰소, 이중섭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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