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허기진 오후 네 시
오래된 생식가루 한 봉 털어 넣고
콜록이며 길을 나섰다
걷는 것은 지면을 미는 일이지만
그것도 버거워 땅을 쓸며 지나갔다
빈 벤치 옆에는 문정희 시인이 서 있어
듣는 이 없어도 노래를 읊조렸다
나직한 그 가락에 발이 엉켜서
하마터면 넘어질뻔했다
모든 길은 저녁이면 멈추는데
왜 영원할 것처럼 여겼는지
오로지 서로를 위해
단 하루를 걷지 못했음이
길 끝에서 가슴 아픈 것이다
* 삼성동 경기고 담장을 끼고 올라가는 길.
단조롭던 시멘트길이 화단과 벤치와 시비로 단장했다. 문정희 시인의 작품 일곱여덟 편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작가의 섬세한 표현과 자연스러운 리듬감이 짧은 길을 오랫동안 걷게 만든다.
길 처음과 중간과 끝.
자리마다 우러나는 감상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