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형 Nov 30. 2020

2020. 11. 29   휴일 풍경

호떡, 그리고 뜨거움


집으로 들고 온 호떡은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어제, 11월 끝 주 요일의 기온은 영상이었지만 한낮에도 한자릿수 기온을 넘어서지 않았다.

북방의 찬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오는 계절.

그러고 보니 입동이 한참 전에 지났다.

바람은 지긋지긋한 미세먼지를 밀어내고 청명한 초겨울의 풍경을 드러냈다.

맑은 하늘을 보기 어려운 요즘, 이를 허락한 자연의 손길에 감사를 드리게 된다.

덕분에 살짝 감기 기운이 돌았고 한판에 10알짜리 저렴한 약국용 감기약을 두 판째 복용하고 있었다.

그것도 생각나면 먹고 아니면 건너뛰고였다.


일요일 정오.

야채, 단백질, 탄수화물 순으로 먹는 식단.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건강관리상 효율적이라는 어느 의사의 칼럼이 나름 리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슷하게 먹거리를 챙겨 보았다.

야채는 그때그때 집에 있는 각종 야채를 살짝 데치거나 백김치 위주로, 단백질은 계란 두 알을 수란식으로 끓는 물에서 익히고, 탄수화물은 잡곡밥 반공기나 떡을 적당히 데워 먹는다.


언제부턴가 아침에 일어나면 스스로 느낄 정도로 구취가 생겼다.

동시에 세월의 야속함도 밀려왔다.

그래서 일어나면 세수도 하기 전에 맑은 물로 입을 한번 헹구고 빈 칫솔로 가볍게 입안을 골고루 닦아낸다.

그러면 정말로 간밤에 내입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할 정도로 착색된 입 땟물이 나온다.

가끔은 가래도 동반하신다!

그 후엔 소금물로 가글.

입안이 따가워도 좀 길다 싶게 옹알거리다 뱉어내면 간밤의 어두운 기억을 모두 씻어낸 듯 개운하다.

일반 치약, 의료용 치약, 무계면 활성제 치약, 독일제 치약, 시판용 가글 등을 모두 써 봤지만.

우리 선조들이 오래전부터 쓰셨던 굵은 막소금을 따라갈 수가 없다.


아주 어릴 적 동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 할아버지가 손가락에 굵은 소금을 묻혀 손가락으로 이를 닦는 것을 보았다.

왜 소금을? 그리고 손으로?


세월이 지나 천연소금이 강력한 살균효과를 가진 자연 친화적인 구강제라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굵은 소금을 칫솔에 올려 이를 닦았는데 날카로운 소금 결정에 잇몸이 찔려서 피를 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염증이 생기지 않고 별 탈 없이 아물었다.

그러나 아침마다 피를 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머리를 짜내었다.

소금물을 약간 진하게 만들어서 입안에 약간 머금고 칫솔질도 하고 가글도 해보니 개운하고 상큼했다.

부글거리는 거품기가 가시지 않는 시판용 치약과는 뒤끝이 전혀 다르다.

치약의 잔존하는 거품 유발성분은 위로 흘러들어 가 보호 점막마저 벗겨내어 상처를 쉽게 유발한다. 그리고 위암으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이쯤 되면 누군가 아는 것이 병이야~할 듯도 하다)


어쨌든 무언가 머리를 짜내 활용 방도를 찾았을 때는 몸에 엔도르핀이 솟는 것 같다.

보통은 그것을 성취감이라고 칭할 텐데 사실 소금물의 효용보다도 이렇게 나름 응용했다는 뿌듯함이 소금물을 바라볼 때마다 재현된다.

그리고 입안에 남은 살짝 짠맛은 식욕을 돋우니 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곤 몸을 덥히는 효과가 탁월한 옻물 한잔을 전자레인지(친환경교육에서 가급적 사용을 삼가라고 해서 과감하게 없앴다가 최소한의 사용 기준하에 다시 구입했다ㅠ)에 살짝 데운다.

그리고 간과 노폐물 해독에 좋다는 레몬즙을 몇 방울 섞어서 마신다.

(레몬 요법은 원래 아침식사용으로 기상하면 따뜻한 홍차에 레몬즙을 떨어뜨려서 반점이 생기도록 숙성된 바나나와 함께 먹는 식단을 응용한 것이다)

그렇게 몸이 훈훈해지면 이어지는 샤워에는 비누를 사용한다.

그리고 머리칼은 샴푸로 다시 한번 씻어낸다.

바디 소프나 바디클렌저는 향은 좋으나 미끌거림이 쉽게 가시지 않아요 개운치가 않다.

그래도 겨울철에는 피부 보습 때문에 가끔씩 쓰긴 한다.


사실 입과 몸을 닦은 후 식사 전에 규칙적으로 명상 시간을 갖는다.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 잠들기 전.

나에겐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나와 주변의 사람들과 세상을 관조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의 기분과 마음가짐으로 하루라는 그물을 펼쳤다 거두곤한다.

그 그물엔 의미 있는 사건이 건져 올려지기도 하고 빈 그물일 때도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어느덧 다시 기도와 명상의 시간이 찾아온다.

한때는 규칙적인 행위를 지속하기가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나 지금은 스스로를 지켜내는 좋은 약과도 같다.

알잖는가~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무섭고 넘어지고 무릎도 까지고.

그 후 따릉이를 타고 시원한 숲길을 달릴 때 기분이란~


식사를 마치고 나니 몸상태는 쾌청은 아니지만 조금 긴 산책을 하며 바깥공기를 맡고 싶어졌다.


대학 때 어느 신문에서 일본의 한 기자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가 쓴 기고문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청계천 일대를 돌아보고는 수많은 전자, 기계, 공구상의 부품들로 인공위성이라도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평을 했다.

그래?

그곳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기사를 접한 다음 주 일요일에 청계천 공구상 거리를 처음으로 가봤다.


지금은 청계천이 복구되어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에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전에는 청계천을 복개하여 도로를 깔고 지상에는 고가를 설치하여 엄청난 양의 차량들이 통행하고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당연히 옛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으니 청계천이라는 지명을 전혀 실감할 수 없는 때이었다.


공휴일이라 많은 시민들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러 나와 있었고 나이 지긋한 분들은 한가하게 뒷짐을 지고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식으로 상가에 입주한 전자 기계공구상점 앞 도로 한편 바닥에 노점이 수없이 펼쳐져 있었다.

온갖 그릇, 골동품, 미싱, 헌 옷가지, 낡은 병풍이나 유화, 신발, 가방, 모자, 미제 약품, 식탁, 티브이 축 같은 중고가전제품, 그리고 번데기나 풀빵을 파는 수레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중고서적과 헌 레코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 이런~

퀴퀴한 오래된 종이 냄새, 컬러가 바랜 레코드판 집.

그곳엔 지나간 모든 삶의 양식이 되살아나서 시간의 가늠 없이 한데 섞여 움직였다.

정갈한 다듬잇돌 앞엔 할머니가 앉으신 듯하고 오래된 미싱 바늘엔 어머니가 실을 꿰고 계신 듯했다.

멋진 신사용 모자는 아버지의 외출을 연상시켰다.

희미해졌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그리고 표현할 수 없는 아늑함과 설렘이 동시에 나를 감쌌다.

당시 그곳에서 직접 구매를 한 적은 몇 번 없지만 그 후로 자주 들려보는 나만의 원픽 장소가 되었다.




옛 정취는 사라졌지만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활기가 흘러넘치는 그곳을 버릇처럼 다시 찾았다.

청계천이 복구되어 노점상들은 천에서 종로 쪽 방향 골목으로 들어와 신설동 풍물시장에서부터 동묘 앞을 지나 길게 진을 쳤다.

이제는 물건을 살펴보는 요령도 상당히 늘어서 불필요한 구매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가령이면, 5개쯤 물건이 눈에 들어온다 치면 꼭 쓸모 있는 것 2개 정도로 중요 순위를 매겨서 구매를 제한하는 것이다.

상당히 유용한 방법이지만 사실 이 기술을 체화하는 과정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싼 맛에 괜찮은 물건을 살 때는 득템의 기분 좋음이 생긴다.

그러나 결국 방 한구석에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다시 재활용 통으로 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


가끔씩은 상인들이나 구경꾼들과는 담소를 나누는데 대화가 서로 통하면 그것도 꽤 재미있다.

군데군데 저렴한 식당도 있어서 장터처럼 소박하게 밥 먹는 맛이 있다.

신설동에서 동묘로 가는 그곳 골목 한 모퉁이 일요일마다 호떡 수레가 자리한다.

그런데 그곳의 호떡은 약간 붉은빛이 나서 더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수수 호떡이다.

이미 식사를 마쳤지만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서 호떡 두 장을 이천 원에 사서 가방에 넣었다.

다른 이들은 뜨거운 철판에서 익혀진 호떡을 입김 불어 가며 서서 먹고 있었다.


몇 시간 후 거실 식탁 위에 꺼내놓은 호떡은 식어서 굳어 있었다.

조금 물칠을 해서 전자레인지에 살짝 덥혔더니 약간은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현장의 그 뜨겁던 생생한 김이 오르던 맛이 아니었다.

호떡은 굳은 몸을 펴기 어려워했고 나는 힘주어 질긴 떡살을 이로 잡아떼어내야 했다.

적절한 관계가 성립되기 어려운 공기 속에서

호떡도 나도 서로를 향해 무색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제때에 서로를 향해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했는지.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챙겨보려 할 때는 이미 관계의 생기가 끊어져 버리지는 않았는지.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서도 왜 서로에게 차가워졌는지.

하찮은 말 한마디도 때에 맞으면 보석처럼 빛나는데 왜 미리 알지 못했는지.




나는

어제저녁

뜨거운 한 존재가

불수레에서 멀어져

식어 숨이 사라지도록

무심히

이곳저곳을 배회했음을

어둠이 내린 후에야

뒤늦게 알아차렸다.


우리의 사랑도

그처럼

그때, 그 자리를 벗어나면

열기를 잃고

화석처럼 굳어지는 것인가...



* 아,

그러고 보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얘기가 빠졌다.

전에는 마스크 미착용 중장년들이 종종 보였지만 어제는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특히 이곳은 절대적으로 연령층이 높은 분들이 나들이 오기에 감염에 취약할 수가 있어서 조심스러운 곳이다.

식당에서는 옆 테이블의 두 노인분이 막걸리를 드시며 너무 말씀이 많으셔서 재빨리 식사를 마치고 나와야 했다. 그런데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양반들의 막걸리가 그날따라 참 맛있게 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