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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Apr 15. 2024

비와 라일락

꽃향기 내려앉는 생의 아침


라일락꽃이 땅에  닿았다

저 먼 하늘의 한 점을 향해 뻗어내던

긴 목을 구부려

땅 위에 살포시 누웠다


진한 향기마저

이슬에 젖어들어

가장 낮은 아래를 찾아 흘러간다



작은 물방울들이

촉촉이 배어들어

끓어오르는 생의 시간을

나지막이 내려놓게 만든다


그래 오늘 하루는 쉬어 가렴


빛나는 화환 뒤로

수고로움이 넘쳐날 때

황톳빛 가슴에

얼굴을 묻고

투둑

눈물을 흘려도 좋을 아침이니까




* 빗발이 점점 거세어지자

늘어졌던 라일락 꽃가지는

아래로 아래로 몸을 낮추더니

기어이 땅 위에 머리를 기대 누웠다


하루의 할 일과

이 생의 모든 책무를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는 메시지

비를 맞고 선 꽃나무에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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